파리의 박물관

낭만주의 박물관 : 상드, 쉐퍼, 르낭

파샤 (pacha) 2015. 3. 21. 07:35

낭만주의 화가 아리 쉐퍼(Ary Scheffer : 1795-1858)의 아틀리에. 아리 쉐퍼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두 남동생과 함께 1811년에 파리에 정착한다. 1822년부터 오를레앙 공작(훗날 루이필립왕)의 자제들한테 데생을 가르친다. 그 가운데 마리는 여류 조각가로 재능을 보이나 서른 여섯 젊은 나이에 죽는다. 마리 도를레앙(Marie d'Orléans)의 청동조각 [기도하는 잔다르크]가 전시되어 있다. 오를레앙 가문은 아리 쉐퍼한테 가족 초상 여러 점을 주문한다. 1858년에 아리 쉐퍼가 죽자 그의 무남독녀인 코르넬리아가 남편과 함께 샾탈(Chaptal) 길의 이 건물을 사들인다. 이 부부는 이 집으로 에르네스트 르낭, 샤를 구노, 이반 투르게네프 등을 초대하곤 했다.


박물관 들어가는 입구.


"누벨 아테나" 지구(이곳에 배우, 화가, 문인들이 여럿 모여살았다.) 중심에 1830년에 건축되어 쉐퍼와 르낭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 후손들이 1982년에 르낭-쉐퍼 박물관을 열고, 그뒤 건물을 수리하여 1983년에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 화가들과 문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파리시립 박물관으로 문을 연다. 


1층에는 조르주 상드(1804-1876)의 기념물, 가구, 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상드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 관련된 초상과 유품들도 볼 수 있다. 1923년 상드의 손녀가 파리시에 기증한 것들이다.


2층에는 화가 아리 쉐퍼의 다양한 작품들(초상화, 종교화, 역사화...)이 전시되어 있다.

아리 쉐퍼의 살롱 겸 아틀리에에 아리 쉐퍼는 매주 금요일에 낭만주의 엘리트 예술가들, 상드, 쇼팽, 들라크루아, 앵그르, 로시니, 리스트, 티에르, 디킨스 등을 초대한다. 


루브르의 낭만주의 대작 전시실에 가면 아리 쉐퍼의 작품 둘이 들라크루아와 드라로쉬(Paul Delaroche)의 작품들과 가까이 걸려 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1855), [술리오트의 여인들](1827). 아리 쉐퍼는 화가들(들라크루아, 위에Huet, 앵그르, 베르네, 들라로쉬...) 뿐만 아니라 종교계, 정치계, 문학계 사람들(귀조Guizot, 몽탈랑베르Montalembert, 라므네Lamennais, 토크빌Tocqueville)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아리 쉐퍼,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망령이 단테와 베르질리우스 앞에 나타나다], 1855.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를 소재로 삼음. 단테의 [지옥편]은 낭만주의 작가와 화가들한테 큰 영향을 끼친다. 

형수 프란체스카를 좋아한 파올로, 남편보다 시동생한테 끌린 프란체스카의 사랑 이야기. 


앵그르,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1819, 앙제 미술관.

프란체스카는 나이든데다 못난이며 절름발이인 용병대장 잔초토 말라테스타(Gianciotto Malatesta)와 결혼하였다. 남편이 끊임없이 전쟁터에 나가자 그의 동생 파올로가 남편한테 버림받은 형수의 말벗이 되어준다. 기사도 소설 [랑슬로의 소설 Roman de Lancelot]을 읽다가 둘이 입맞춤을 하는 순간 잔초토가 불쑥 나타난다. 랑슬로가 갈망했던 입맞춤을 하는 장면을 읽다가 파올로는 불타는 입술을 프란체스카의 입술에 갖다 댄다. 그 순간 소설책이 떨어진다. 이 책을 통해 둘은 사랑의 비밀을 알아냈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아리 쉐퍼, [술리오트의 여인들], 1827년 살롱. 

남편들이 알리 파샤의 군대한테 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 여인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로 결심한다.


박물관 입구


탁자 위에 놓은 초상은 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Maurice Quentin de la Tour)가 1848년에 그린  조르주 상드(George Sand)의 증조 할아버지 삭스(Saxe) 원수. 삭스 원수는 폴란드왕 오귀스트 삭스(Auguste II de Saxe)의 사생아로 루이15세 시절 퐁트누아(Fontenoy) 전투에서 군사지휘관으로 크게 활약한다. 이런 공훈으로 루이15세로부터 샹보르성을 선물받는다. 삭스 원수의 초상이 놓인 탁자와 두 의자는 루이15세의 것이고, 서랍장 위에 삭스 원수의 흉상이 놓여 있다.

오른쪽 벽에는 상드의 아들 모리스가 그린 [악마의 늪]의 삽화. 모리스 상드는 들라크루아의 유일한 제자. 상드는 어머니의 소설에 삽화를 그린다. 


대학시절 최초의 불어스터디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드의 [악마의 늪]을 선택했는데 몇 페이지 보다 그만두고 말았다. 우선 별 재미도 없었고, 무엇보다 텍스트를 제대로 해독해 낼 실력도 없었다.

 

상드는 남장을 즐겨하고 이름도 아예 남자 이름인 조르주(George)로 바꾼다. 상드의 할머니는 한때 쉬농소성의 성주였던 마담 뒤팽(Madame Dupin, Aurore de Saxe)이다. 상드는 쇼팽과의 불같은 연애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상드는 말년에 우연의 효과를 노린 수채화에 몰두하였다.

 

아래 사진 오른쪽의 1838년 상드의 초상은 오귀스트 샤르팡티에(Auguste Charpentier) 작품. 


상드와 관련된 보물 전시실에는 상드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170점의 패물들이 상드의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상드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한테서 나온 물건들에 유독 집착하는 편이다." 하고 말한다. 상드의 조상들과 가까운 인물들의 초상이 걸려 있다. 삭스 원수, 상드의 사위인 조각가 오귀스트 클레쟁제(Auguste Clésinger), 사돈인 판화가 루이지 칼라마타(Luigi Calamata), 쇼팽, 상드가 "유명한 환쟁이"라고 부른 들라크루아 등. 상드가 가장 아낀 것은 삭스 원수의 코담배갑과 폴란드 공주 루이15세 비 마리 레진스카가 뒤팽부인한테 선사한 루비반지다. 상드는 "이 반지를 늘 끼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녀의 사위 클레쟁제가 1848년 살롱에 출품한 [상드의 흉상], 클레쟁제가 석회로 주물뜬 상드의 팔과 쇼팽의 왼손은 이 둘의 팔년에 걸친 격정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다비드 앙제가 제작한 상드, 리스트, 뮈세, 들라크루아 등의 메달, 상드의 아들 모리스 상드의 초상, 앵그르가 그린 판화가 루이지 칼라마타의 초상, 들라크루아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앙리 쉐퍼(아리 쉐퍼의 동생), [에르네스트 르낭 Ernest Renan], 1862.

르낭은 역사학자며 종교 철학자로 앙리 쉐퍼의 사위. 르낭의 미망인 코르넬리 쉐퍼가 자신의 사촌(아리 쉐퍼의 무남독녀인 Cornélia Scheffer-Marjolin은 재능있는 피아니스트였다)이 죽으면서 이 집을 물려받는다. 

르낭의 저작으로는 [기독교 기원의 역사](1863-1881), [예수의 삶](1863),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1887-1893), [국가란 무엇인가?](1882) 등이 있다.


아리 쉐퍼, [연구실의 파우스트 박사]. 

아리 쉐퍼는 당대의 유명한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주로 얻는다. 대표적인 예가 괴테의 [파우스트]다. 1830년대까지 그의 작품에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대작이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에 클로즈업 시켜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파우스트 박사는 지식이 자신한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 뒤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미래의 희생양을 염탐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빌어 마그리타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아리 쉐퍼, [교회에 간 마그리타]와 [죽은 아들을 안은 마그리타]. 

아리 쉐퍼는 [파우스트] 이외에도 네르발(Nerval)이 번역한 독일 시인 뷔르제(Burger)의 발라드 "레노르Lénore"([죽은 자들은 빨리 간다], 레노르의 싯구절), 월트 스코트의 고딕풍 소설 ([에딘브러 감옥의 에피와 자니]), 바이런의 드라마 ([지아우르Giaour]) 등에서 영감을 받는다. 이런 중세 고딕풍의 극적인 주제는 들라크루아 같은 낭만주의 화가들한테 큰 영향을 끼친다.


아리 쉐퍼, [루이즈 도를레앙 공주 1833]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황수선화가 핀 정원


박물관 오른쪽은 찻집이다.


나오는 길. 한적한 시골 마을의 집에 들러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