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식 글쓰기
한동안 나는 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쳤다. 아이폰을 들고 노마드적 작업을 많이 하면서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때 화면을 만지작대는 꼴이 우습다고 비웃던 나도 이젠 주로 화면을 눌러 글을 찍는다. 게다가 왼손 엄지로만 눌러 쓸 때가 많다. 때에 따라 엄지 둘로 쓰기도 한다. 다섯 손가락으로 칠 때보다 느리긴 해도 힘은 덜 든다. 요즘엔 필기도구로 꾹꾹 눌러 쓰는 일은 갈수록 드물어간다. 종이를 꺼내고 볼펜을 잡는 일이 별로 없다. 더군다나 연필로 쓰는 일은 거의 없다. 필기도구 없이 손으로 요술부리듯 바로 글자를 만들어낸다. 비뚤거나 반듯하지 못한 글씨체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어린시절 나는 멋진 필체를 만드려고 무척 애썼지만 결국 악필을 면하는 수준에서 만족하였다. 초등과 중등 시절 그림 잘 그리고 글씨 잘 쓰는 친구를 무척 부러워했다. 중학교 때 조창식이라는 같은 반 친구가 화선지에 붓글씨로 반듯하게 잘 쓴 "정신일도 하사불성"을 환경미화한다고 교실 가운데 오른쪽 벽에 붙였다가 나중에 거두어 집에 가져와서 소중히 보관했다. 그런데 멋진 서체라는 게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훨씬 뒤에 알게 되었다. 컴퓨터를 쓰면서 글씨를 못 쓴다는 자괘감이 없어져 좋았다. 관리를 뽑을 때 세번째 기준인 서체에 덜 목매달아도 된다. 자판을 치거나 화면을 누르면 자신이 원하는 반듯한 글자체가 곧 바로 나온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글씨체를 맘대로 골라 크기도 조절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이 본다면 저런 마술도 없다고 했으리라. 인쇄해서 잘 묶으면 바로 책이 된다. 책이 신성시되던 시절과 비교하면 책 만드는 일도 식은 죽먹기다. 누구나 쉽게 인쇄하고 제본해서 책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책이 가지는 신성함은 사라졌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무턱대고 이렇게 믿어왔다. 그 가치나 진위에 관계없이 책은 진실과 진리를 담고 있다고... 세월의 흐름에도 아랑곳 않고 살아남은 책들을 성서 경전 고전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책은 그저 그런 하나의 소비재가 되었다. 예전이라고 별 볼일 없는 책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출판규모가 적다보니 그래도 책으로 나온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였다. 거기엔 외부와 내부의 검열도 한몫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는 수가 숱하다. 원고를 수정해서 출판하거나 일부가 잘리고 출판되기도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팔십년대에 이념서적이라고 몰아붙여 출판금지에다 판매금지된 책들을 떠올리자. 언론출판의 자유가 적을수록 해적판이 판친다. 자유를 제한한다고 표현의 욕구까지 억제할 수는 없는 일. 때에 따라 출판사가 출판을 거절하는 수도 적지 않다. 물론 이런 저런 검열 때문에 당대에 출판 못한 것 중에 후세에 빛을 보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작품도 적지 않다. 구전문학의 경우가 대부분 그렇다. 의도적으로 작가가 자신을 숨길 수도 있다. 그래서 몇 세기가 지난 다음 작가가 밝혀지기도 한다. [동인도 여행 일기]를 남긴 로베르 샬(Robert Challe)이라는 17세기 초에 주로 작품을 발표한 프랑스 작가가 그런 경우다. 작가가 자신의 흔적을 없애려고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였기에 꼼꼼한 문학연구가들의 그물망을 빠져나갔다.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샬은 작가로서 조명을 받음은 물론 그 정체가 드러났다. 삼백 년 걸린 화려한 복권이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가 쓴 [비관주의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라는 소설은 독일에서 번역판으로 먼저 출판되고 프랑스에서는 십 년 뒤에야 책으로 나온다. [수상록]의 저자인 몽테뉴의 [여행 일기]는 필사본 형태로 숨겨져 있다가 이백 년이 지난 뒤 우연히 발견되어 출판된다. 그래서 생긴 말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예술 뿐 아니다. 유투브도 한번 빠지면 무섭게 길어진다.
요즘 들어 한번 보고 버리거나 정보의 혼란만 주는 형편없는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내용보다 광고에 치우치는 경향도 뚜렷하다. 이런 책을 베스트 셀러로 억지로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대형서점의 좋은 자리에 책을 무더기로 쌓아 두거나 진짜 독자가 아닌 사람이 대량 구매를 하여 판매실적을 조작한다. 온갖 미디어를 총동원하여 부풀린 서평에 과대광고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독자들은 책 내용의 가치보다 작가의 유명세나 출판사를 우선 보고 책을 고른다. 사실 작품의 가치와 대중적인 인기도가 일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대에 엄청나게 팔려나간 책이 한 세대가 못 가서 잊혀진 작품이 지천이다. 팔십년대에 [인간시장]이란 연작 베스트 셀러가 있었다. 그 시절 하숙집 방바닥에 일본 포르노 잡지와 나란히 나딩굴던 책이었다. 반면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작품성을 안정받는 작품도 더러 생긴다. 이 경우는 전위적이고 난해한 작품의 경우가 많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림직하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추기란 참 어렵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종이가 맨질맨질하고 표지가 그럴 듯한 참고서를 주로 택하곤 했다. 참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내용 보다 근사한 포장과 종이질을 맨 먼저 따졌으니... 책으로 나온 것은 종류에 관계없이 무턱대고 내용이 믿을 만하다고 여긴 탓이었다.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긴 작가를 볼 때면 어떻게 저 많은 양의 원고를 손으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뒤마처럼 대필작가(nègre, 네르발도 한때 그의 네그르였다)를 여럿 거느리고 대량 제작한 경우도 있다. 미술에서는 아틀리에의 공동제작이 널리 알려져 있다. 조각은 협업작업이 대부분이다. 회화에서도 제자나 협력자와 함께 작업하는 수가 많다. 대표적인 화가는 바로크의 대가일 뿐 아니라 서양 회화사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엄청난 영예를 누리는 루벤스다. 루벤스는 협력자로 자신의 실력에 버금가는 시나이더스와 반 다이크를 고용했다. 로댕도 협력자로 마이욜과 부르델 같은 뛰어난 조각가를 협력자로 썼다. 스탕달 위고 네르발 같이 이미 발표된 자료를 무더기로 베끼는 기법을 쓰기도 한다. 그야말로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 작품이 적지 않다. 출처를 밝히면서 인용 형식을 따르기도 하지만, 심지어 자신이 쓴 부분보다 인용 분량이 더 많은 작품도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걸작품이라는 것도 늘 그 모델이 있기 마련. 네르발은 [소금 밀매꾼들]에서 아이러니한 톤으로 "희한한 이야기"의 원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구의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를 모방했고, 누구를 모방한 이야기는 또 누구의 이야기를 모방했는데...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천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다. 이 유머 넘치는 수사법과 내용 또한 선배 작가 샤를 노디에한테 빌어온다. 인용하든 베끼든 탁월한 작가의 손을 거치면 원작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한층 수준 높은 새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스탕달의 [이탈리아 연대기], 라마르틴의 [동방여행], 위고의 [라인강], 네르발의 [소금 밀매꾼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여행기는 먼저 나온 여행기를 바탕으로 씌어져서 여행지 정보라든가 그 곳에 얽힌 일화가 되풀이 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여행기에 유독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많이 끼어든다. 발표순으로 샤토브리앙의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 라마르틴의 [동방여행]이나 네르발의 [동방여행]은 먼저 나온 여행기를 언급하거나 같은 일화를 재탕으로 끼워넣는다.
비단 글쓰는 행위 뿐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손으로 하는 일이 부쩍 줄었다. 가사노동에서 기계가 대신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손놀림은 몰라보게 줄었다. 세탁기 청소기 세척기가 대표적이다. 편해진 한편 손놀림이 단순해지면서 손의 기능은 퇴보되었다. 기계작동의 자동화는 그나마 하던 손놀림도 하지 않게 만든다. 원격조정이나 자동제어 실행 아니면 로봇이 대신한다. 이미 셈을 주판이나 암산 대신 계산기로 하면서 머리쓰는 일도 몰라보게 줄었다. 간단한 덧셈 뺄셈도 계산기로 한다. 어쩌다 암산을 할라치면 기름 안 친 기계처럼 뻑뻑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샤프가 나오면서 연필을 덜 쓰게 되었다. 연필깎기가 생기자 칼로 연필을 다듬는 일도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칼로 연필을 깎는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연필을 참 많이도 깎았다. 연필용 칼로 연필심을 둘러싸는 연한 향나무를 깎고 새카만 흑연 연필심을 끝이 뾰족하게 다듬었다. 뭉툭해지면 곧 바로 발그스레한 속살을 깎고 시커먼 심을 갈았다. 못 쓰는 종이에 대고 칼로 심을 갈고 깎은 다음 흑연 가루를 바로 버려야 했다. 연필깎는 일은 공부의 신성한 준비운동이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주로 볼펜과 만년필을 쓰면서 연필로 쓰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종이 위에 연필로 글을 쓸 때 사각사각하는 소리는 듣기 나쁘지 않다. 반면 컴퓨터 자판치는 소리는 몹시 귀에 거슬린다. 화면을 눌러 쓰면서 자판칠 때처럼 소음이 나지 않아 좋다. 컴퓨터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필기도구로 글 쓰는 일은 현격히 줄었다. 색이 나오면서 글자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판을 두들기면 기계적으로 가지런히 글자가 튀어나온다. 허트러짐이 없는 네모 반듯한 글씨가 귀신 같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기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점토판에 쇠꼬챙이 같은 도구로 새발자국 처럼 콕콕 찌르고 찍 그은 쐐기문자, 붓이나 끌로 그림 그리듯 조각 하듯 모양새를 낸 이집트와 중국의 상형문자는 다 나름대로 조형미가 뛰어나다. 한글 역시 조형성이 뛰어난 글자임에 틀림없다. 수고본 책을 보면 로마자도 화려한 장식체는 글자 그 자체로도 모양새가 그럴 듯하다. 그림 그리듯 휘갈긴 초서체의 아랍 글씨를 보면 저걸 보고 어떻게 글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생긴다. 지렁이가 제멋대로 그린 해독불가능한 지도 같다. 점토판에 파피루스에 양피지에 나무에 돌에 글씨를 썼다. 화강암에 글자를 파서 새기기도 했다. 새기는 행위는 알림과 동시에 남기는 행위다. 글자의 발명은 문명의 시작이었다.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고 지식을 전달한다. 그 뒤로도 인류의 위대한 발명, 가령 인쇄술의 발명은 인간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쇄술이 지식의 보급을 대중화 민주화하기에 이른다. 필사본 책을 가진 자만이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가 끝나고 대량 생산이 쉬운 인쇄물을 통해 지식의 보급과 전달이 한결 빨라진다. 인간을 새로 발견했다는 르네상스 시절쯤 이야기다. 중세까지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하던 가장 중요한 일과는 책을 베껴 수고본을 만드는 일이었다.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는 어쩌면 수도원이 지식과 정보를 독점했을 수도 있다. 가끔 대중들한테 비밀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책을 감금하거나 금서로 묶기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런 주제로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을 쓴다. 로마 카톨릭에서 인정하지 않는 외경이 여럿 있다. 자기네 교리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이단으로 몰아부친다.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는 손으로 쓰고 그려 책을 만들었다. 책은 지식이나 정보를 담은 소중한 도구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그 당시 책을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가업이었다. 아비가 그리면 아들이 쓰고 어미는 묶어 책을 완성시켰다. 글자를 몰라도 그리듯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형형색색으로 글씨를 쓰고 금박이며 번쩍이는 원색조의 삽화가 들어간 책은 분명 하나의 예술품에 가깝다. 샹티이성에 가면 오말 공작이 수집한 아름다운 책들을 볼 수 있다. 그의 멋진 서재를 보고 나서 책이 읽기 위한 것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소금 밀매꾼들]에는 희귀본 고서 수집가 이야기가 몇 나온다. 책을 목숨처럼 지키는 도서관 사서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희귀본을 구하려는 책수집가 이야기다. 둘다 책 수집가인 둘도 없는 친구 사이에 문제의 책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친구의 서재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보자 수집가는 환장하듯 달겨든다. 친구한테 자신이 가진 희귀본에다 제법 웃돈을 얹어 제의하지만 책 주인은 절대 내놓지 않는다. 결국 책 주인이 죽은 다음 경매를 통해 그 책을 손에 넣게 된다.
나름 화면을 눌러 쓰는 장점도 많다. 필기도구를 통해 색이 칠해져야 문자가 되는 것보다 힘이 덜 든다. 잘못 쓴 거나 오타도 쉽게 고쳐쓸 수 있다.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나한테 딱 맞다. 장소도 훨씬 덜 차지한다. 아니 장소랄 것도 없다. 종이도 필요없고 펼쳐둘 자리도 필요없다. 그저 스마트폰만 쥐면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 순서대로 쓰지 않고 아무 데나 끼워넣을 수도 있다. 이리하여 내 글은 완결판이 없다. 언제나 미완이다. 빼는 수는 거의 없고 끊임없이 더하거나 고쳐진다. 나는 확실히 발자크형 글쓰기를 하는 셈이다. 출판사에서 교정쇄가 오면 발자크는 수도 없이 내용을 추가하여 늘이는 작가였다. 반면 플로베르는 교정쇄에서 자신이 쓴 글을 계속해서 줄여 출판사로 보냈다. 원고를 늘이든 빼든 출판될 때까지 또는 다시 출판될 때도 수없이 고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판본의 고전문학 텍스트를 보면 너저분하다 할 정도로 이본이 주석에 많이 달려 있다. 이본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고쳐 썼다는 뜻이다. 달리 보면 텍스트는 완성되어 고착된 게 아니라 늘 미완의 상태로 변화한다. 또 시대가 바뀌면 같은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바뀌어서 텍스트는 언제나 미완성이다.
또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면 남의 방해도 덜 받는다. 남이 글 쓴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쓸 수가 있다. 저 양반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지 채팅을 하는지 알게 뭐람! 보관도 편리하다. 저장해서 갖고 있거나 이게 불안하면 메일로 보내 보관할 수도 있다. 전달 역시 한결 쉽다. 문자 메시지 메일 소셜 네트워크 등 다양하게 보낼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네 습관도 거기에 맞춰 달라진다. 이젠 자판으로 치는 것보다 화면 누르기에 훨씬 익숙해졌다. 그러고 보면 습관은 참 무섭다. 기술변화에 따라 습관이 달라지고 소비양상이 바뀐다. 이제 문방구가 얼마나 필요하겠나. 서점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듯이 훨씬 전부터 문방구점은 사라져가는 가게다. 문방구는 필수품에서 장식품이나 사치품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이미 오래 전에 펜은 본디 쓰임새가 사라지고 그저 장식품처럼 되었다. 중학교 때 로마자 필기체 쓴다고 펜으로 연습하던 때가 아주 오랜 옛날은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유명작가의 집을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유품이 필기도구나 책상이다. 깃털펜이나 잉크통은 이제 옛 시절의 골동품으로 구경거리가 되었다. 파리에 있는 빅토르 위고의 집에 가면 위고의 부인 아델이 네 사람의 낭만주의 작가한테 선사받은 잉크통을 볼 수 있다. 라마르틴, 뒤마, 상드, 위고다. 오래 전에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잉크통은 탁자에 화석처럼 꼼짝 않고 붙어 있다. 뒤마와 위고가 쓰던 펜은 잉크통 앞에 납작 누워 있다. 주인의 손을 떠난 잉크통과 펜은 관람객의 시선도 제대로 못 끄는 그저 그런 사물로 남았다. 만년필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그 보다 나중에 등장한 볼펜은 아직은 제 기능을 잃지 않았다. 샤프의 출현으로 연필도 쓰임새가 많이 쪼그라들었다.
화면을 눌러 쓰기도 하지만 목소리로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감옥에서 말로 이야기한 것을 프로방스어로 옮겨적은 것이다. 이와는 성질이 다르긴 해도 손이 여의치 않으면 말로 글을 기록하면 된다. 글쓰기 도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손가락이나 음성을 통해 바로 글을 만들게 되었다. 화면 누르기는 모래 위나 흙 바닥에 손가락으로 직접 쓰던 방식의 변종이라 할 수 있을까. 한편 자판으로 치거나 화면으로 누르는 글쓰기는 한층 직접적 반사적인 작업이 된다. 필기도구로 손가락이 곱고 팔꿈치가 저리도록 힘들게 쓸 때보다 좋은 생각이 글로 옮겨지기 보다는 즉흥적 감각적인 글이 되기 쉽다. 곰삭은 글이 아니라 자칫 손끝에서 기계적으로 그려지는 얄팍한 생각의 전개가 될까 두렵다. 기술의 진화로 원하는 글씨를 마음대로 화면에 띄우고 인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좋은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은 여전히 애를 써야 한다. 그렇담 당신의 아이폰으로 한다는 게릴라적 글쓰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