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컬렉션 감상
1848년에서 1905(1914)년까지의 그림과 조각, 사진, 영화, 가구, 장식품 등을 볼 때 먼저 몇 가지 개념을 가지고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a) '현대성'.
현대성이란 자신이 살아가는 동시대의 생활상을 작품에 반영하는 측면을 말한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기차, 기차역이나 부르주아나 서민들의 새로운 풍속도를 보여주는 야회 무도회, 카페, 오페라, 경마, 주식시장 등도 작품의 소재가 되기 시작한다. 이미 산업화로 피폐해가는 농촌 생활도 다소 이상화되어 새로운 소재가 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옮겨 담아야 한다. 늘 반복되는 신화적이며 종교적이거나 또는 윤리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당대사회의 주인공인 대중들의 삶을 표현해야 한다. 이상적이고 완벽한 고대가 아닌 현대에서 일상 생활의 영웅성을 반영해야 한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말한다. "화가 그것도 진정한 화가라면 현재의 삶에서 영웅적인 측면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된다." 일상적인 현대 생활에서 소재를 찾아 작품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1847년 살롱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 토마 쿠튀르의 [쇠퇴기의 로마인들]을 보면, 알레고리적으로 썩어빠진 루이필립 시절의 프랑스 사회를 반영한다고 치더라도 현대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 같은 해에 그린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을 보고 아카데믹한 그 그림을 다시 보면 현대적인 게 뭔지 쉽게 다가온다. 우선 작품의 소재가 획기적이다. 다음은 그리는 방식이 미화되지 않고 진솔하다.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마네의 [올랭피아]도 마찬가지다. 마네가 모델로 삼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나 고야의 [옷벗은 마하 부인]하고 비교한다면 훨씬 획기적이다. 고대 그리스적 이상화된 비너스가 아니라 현실에서 접근가능한 올랭피아(뒤마 아들의 [춘희]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으로 고급 창녀의 대명사다.)를 그리다보니 상상을 뛰어넘는 극단적인 야유와 조롱을 받는다. 19세기 중반 당시 사람들은 잘 포장하고 적당하게 감추거나 아니면 신격화한다는 명목으로 미화한 비너스를 원했다. 그래서 에로스의 호위를 받으며 파도 위에 누운 카바넬의 작품은 살롱에서 대상을 받은 반면 자신들이 상대하는 고급 창녀를 있는 그대로 그린 마네의 올랭피아는 비웃음거리만 된다. 마네와 함께 현대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가인 드가는 경마장 풍경, 다림질하는 여자 노동자의 하품하는 모습, 카페에서 압생트 마시는 장면이나 오페라 무대 뒤의 무희들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 주식시장의 분위기 등을 작품화한다. 카이유 보트는 마루바닥을 대팻질하는 노동자를 등장시킨다. 주인공으로서 인물보다는 오히려 풍경의 구성요소로서 인물을 등장시키는 모네도 세느 강변의 부두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그린다. 이런 장면들은 정형화된 풍속화가 아니라 사진처럼 순간적으로 직접 동작을 잡아 생생한 느낌을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현대생활의 "순간적인" 장면을 "진솔하게" 재현한다는 점이다. 아카데미풍의 화석화된 연출이 아니라 현대생활의 단면을 직접 포착한다. 그런 측면에서 루누아르 역시 현대적이다. 삶을 즐기는 부르주아의 일상을 순간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카바레 마당에서 춤추는 사람들이라든지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네 타는 풍경 등은 당대 풍습의 단면을 여실히 반영한다.
b) 사진술.
1830년대에 등장한 사진술은 그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 '다게로티프'라고 부른 은판 사진술은 그 "순간성", "직접성", "솔직성"을 통해 회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사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습작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공들여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그림과 다르다. 인물 사진의 경우 순간적인 인상을 즉각적으로 솔직하게 그 이미지를 담아낸다. 그때까지 초상을 그려 밥벌이를 하던 화가들이 실물의 재현으로 보면 더 정확해진 사진술을 능가하는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화가들은 이제 대상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만으로 사진술과 경쟁할 수 없다.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공들여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게 완성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스케치 같은 테크닉을 통해 순간적인 인상을 파악해내야 한다. 그러려면 순간 순간 변하는 대상을 빠른 붓 터치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그 유명한 인상주의가 태어난다. 사진술을 가장 많이 활용한 화가는 드가다. 드가의 작품을 보면 카메라의 앵글을 연상케 하는 것들이 많다. 오페라의 오케스트라석 뒤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의 상체 부분이 잘린다. 앵글 뿐 아니다. 이런 장면은 마치 스냅사진 같이 순간을 자연스럽게 잡아낸다. 특히 [푸른 무용수]란 작품을 보면 움직이는 무용수의 동작이 뒷배경이 멈춘 듯하게 묘사하면서 더욱 절묘하게 포착된다.
c) 사실주의.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반영하는 기법보다는 지금까지 소재로 등장하지 않던 대중들의 생활상이 이상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쿠르베의 대표작인 [오르낭의 매장]을 떠올릴 수 있다. 평범한 시골마을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보통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을 큰 화폭으로 그렸다. 장례식은 우리네 인생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이 대단한 명사나 유지가 아니라 그저 보통 사람이다. 그 전까지 그림의 주류는 역사화였다. 역사화는 신이나 영웅, 위인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큰 화폭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런데 쿠르베의 작품은 보통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역사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d) '자포니즘(japonisme)'.
서양미술이 추구한 착시효과를 통해 양감과 깊이감이 끝간데까지 다다랐을 때 영감의 원천은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입체감과 깊이감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1867년 만국박람회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일본 판화의 테크닉이다. 평면성을 통해 "형태"와 "거리감"을 동시에 표현한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19세기 중후반의 서양 화가는 거의 없다. 19세기 중반에 오면 원근법은 이제 더 이상 세계를 충실하게 표현하는 효과적인 도구로서의 기능을 잃는다.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은 입체감이나 깊이감은 사라지고 마치 오려붙인 종이인형 같은 느낌을 준다. 인물의 배경은 마치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찍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공간이다. 유일하게 거리감을 주는 것은 왼쪽발 뒤쪽으로 짧은 개꼬리 만한 그림자가 전부다. 전통적인 원근이 아니라 거리감은 색상의 구획으로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가 퐁타벤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이다. 에밀 베르나르나 폴 고갱의 그림을 보면 양감이 사라진 평평한 색상에 따라 공간구분을 해서 거리감이 표현된다.
e) 안티아카데디즘.
아틀리에에서 모델을 보고 정확한 인체 묘사에 중점을 둔 아카데미즘(카바넬, 부그로)은 산업사회의 새 주인공인 대중들의 기호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오랫 동안 지속되어온 고전주의가 막을 내린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카데미풍 그림이 살롱전에서 입선을 한다. 살롱전을 통해 당당히 인정받고 싶어했던 마네는 그 현대성으로 말미암아 번번히 거절당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f) 현장에서 사생.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야외에서 직접 모티브를 보면서 그린다. 퐁텐블로숲 언저리에 자리한 바르비종에 일군의 화가들(도비니, 코로, 피사로, 루소, 페냐 등)이 모여 야외에 나가 현장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1858년 영국에서 발명된 튜브 물감의 등장으로 쉽게 들고 다닐 수 있게 되면서부터 현장에서 대상을 보면서 직접 물감칠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르장퇴유 시절 모네는 센강에 아틀리에-배에서 직접 그림을 그린다.
g) 다촛점 시각.
특히 다촛점은 세잔의 정물화에서 많이 나타난다. 하나의 소실점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원근법과 달리 다양한 각도를 통해 오브제를 묘사한다. 이런 기법이 극단적으로 나간 경우가 1910년대의 브라크와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이 된다.
h) 동시대비.
과학이론을 신인상주의자들은 그림에 적용한다. 보색을 연달아 놓으면 오히려 밝아보이는 효과를 얻는다는 화학자 슈브뢸의 이론을 이용한다. 색채가 망막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여 보색대비에다 화면분할 기법으로 화면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