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1841-1919)
[갈레트 풍찻집의 무도회], 1876. 3회 인상주의전에 출품.
빛과 움직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나뭇잎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이 카바레 마당과 춤추는 사람들의 옷에 쿡쿡 떨어져 박힌다. 이 춤판은 햇빛에 달구어져 보라색(여자)과 진한 군청색(남자)의 이중주를 보는 듯하다. 광란의 스텝과 사각사각하는 여인들의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릴 듯도 하다. 카바레 마당에서 마시고 춤추는 서민들의 놀이문화의 단면을 잘 그려낸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순간을 잘 포착한다. 인물들의 시선도 눈여겨 볼 만하다. 짝을 이뤄 춤을 추지만 눈길은 딴데로 향해 있다. 곁눈질과 유혹의 눈길을 던지는 모자 안 쓴 여인들을 보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 뿐 아니라 하늘을 내리덮은 아카시아 나뭇잎들도 흐릿하게 잡힌다. 원경을 막히게 하여 춤추는 현장을 돋보이게 구도를 잡고 있다. 고조된 음악에 맞춰 광란의 스텝을 밟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앞쪽에 앉은 몇 사람은 쉬는 짬에 이야기꽃을 피운다. 앞쪽 오른쪽의 두 남자 가운데 맨 오른쪽이 르누아르한테 호평을 쓰준 비평가(Georges Rivière)이다 : "역사의 한 페이지요, 파리 생활의 귀중한 기념물이다." 앞쪽 오른쪽에 의자에 앉은 여자와 왼쪽 앞쪽의 키 큰 남자와 짝을 이뤄 춤추는 여자는 둘 다 프로 모델이다. 키 큰 남자는 에스파냐 출신의 화가로 르누아르의 친구다. 의자에 앉은 여자의 어깨에 손을 걸친 여자는 루누아르가 카바레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으로 모델로 쓰게 된다. 르누아르는 이 여인을 발견한 게 행운이라고 말한다. 파리 오페라의 정기 예약자 사이에 낳은 어린 아들 하나가 딸린 몽마르트에서 우유배달하는 여인이다.
그림의 현장은 몽마르트 언덕으로 지금도 두 풍차를 볼 수 있다. 카바레 마당은 두 풍차 뒤로 펼쳐지는 공간인데 바깥에서는 볼 수 없다.
루누아르의 그림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현대생활의 단면을 묘사하는데 삶의 환희를 표현해서이다. 살아가는 기쁨을 화면 가득 채우는 밝은 색조의 향연으로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부르주아의 풍족한 생활이 르누아르의 주된 소재가 된다.
[클로드 모네], 1875
모네는 친한 친구가 그려준 초상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 살롱전에 떨어지고 인상주의전을 시작하던 시절의 가난하고 힘든 시절의 초상.
[그네타는 여인], 1876
날씨 좋은 휴일 오후 삶을 즐기는 중산층의 생활상을 잘 드러낸다.
[풀이 무성한 오르막길], 1876-1877.
모네가 그린 [개양귀비 핀 언덕]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루누아르에서는 빛이 떨리면서 형체가 허물어져 해체되고 빛과 색만 남았다. 순간적으로 변하는 늦봄 아니면 초여름의 화사한 햇빛에 우연히 잡힌 산책객들은 빛과 바람에 날려 증발해버릴 것만 같다.
[쥘리 마네 Julie Manet], 1887
마네의 남동생 Gustave와 결혼한 베르트 모리조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 쥘리 마네는 아홉 살. 고양이 눈과 쥘리의 눈이 닮은 꼴이다. 고양이 배 부분의 흰색과 쥘리의 흰 옷 색깔이 녹아들어 마치 한 몸이 되는 느낌이다. 고양이 등의 털색과 쥘리의 머리색이 역시 조화를 이룬다.
[피아노 앞의 두 소녀], 1892.
6개의 다른 버전이 있다. 넷은 유화로 완성작이고 둘은 파스텔화. 특히 이 작품은 인상주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로 생존화가들의 작품이 걸리는 뤽상부르 미술관에 1892년에 들어간다. 내밀하고 사적인 부르주아의 실내 공간에 등장한 두 인물은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1890년대부터 르누아르는 독서, 음악 연주, 대화 장면들을 주로 소재로 삼는다.
[의자에 앉은 소녀]
[장미를 꽂는 가브리엘], 1911.
1894년 둘째 아들 장(Jean)의 보모로 들어온 르누아르의 부인(역시 루누아르의 모델이었다)의 사촌 가브리엘은 루느아르의 작품에 2백 번 가량 포즈를 취한다. 고전적인 조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루누아르의 여인 초상이나 누드는 거대한 기념물처럼 다가온다.
[목욕하는 여인들],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