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넘어서

코클리코(개양귀비꽃)

파샤 (pacha) 2017. 6. 14. 05:18

클로드 모네, [개양귀비꽃], 1873. 1874년 제1차 인상주의전에 출품.


모네의 풍경화에서 인물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풍경과 대등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다가([풀밭 위의 식사], [정원의 여인들]) 인물들은 점차로 풍경의 일부로 줄어든다([라일락꽃]). 마지막에 가면 인물은 사라지고 풍경만 남는다(밀짚더미나 포풀러 그리고 수련 연작). 이 그림에서 실제로 그림 앞쪽에 양산 든 연 여인이 모네의 부인이고 밀짚 모자를 쓰고 코클리코를 든 소년이 모네의 아들이지만 풍경의 구성요소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코클리코는 손길 닿지 않는 철길가에 무더기로 핀다. 막아둔 철책 기찻길 언덕배기 첫길과 철길 사이 척박한 땅에서 핀다

오며가며 기차 안에서 코클리코를 본다. 내려서 없다. 그래서 저만치 피어 있다. 다가설  없어서 더욱 눈길을 끄나? 

나보란듯 무리지어 핀다. 송이면 애처러웠을 텐데..

자갈 깔린 철길 위 모습은 사막의 선인장. 아무도 오 않는 곳 뿌리 내린 모습은 황야의 수도승

흔한 잡풀들도 터를 잡지 못한 사막 저홀로 핀다

잡풀들 틈새를 헤집고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잡초가 자라지 않는 자갈밭에 달라붙어 일렁이기도 한다

비를 제때 맞지 못해 목이 타들어가도 자그맣게 버틴다. 선로와 선로 사이 바람에 부대끼고 소음에 시달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드센 태양에 풀들이  말라가도 독야청청. 간들간들 대궁 끝에 매달린 새빨간 꽃은 모네 그림이다.


철책 심어둔 시멘트 틈새에 돋은 코클리코는 사막의 오아시스.

풀들이 하나 둘 오갈들어도 저홀로 싱싱! 홀로 피기보다 덩달아 핀다

다 누울 자리를 알고 터를 잡는다. 채송화에서 봉숭아까지 아우르는 키에 주황색에서 선홍색까지 다양한 꽃색을 선보인다. 

풀들과 어울려 피기도 하지만 돌담장 벼락에 매달려 곡예하듯 피기도 한다. 그래도 나무들과 다투지는 않는다. 늘 풀들과 함께다.

코클리코는 여름의 전령사! 

새빨간 꽃이 나타나면 햇살이 거세지고 따가워진. 피나무가 후끈한 냄새를 뿜으며 좁쌀 같은 꽃잎을 누렇게 떨구는 유월의 땡볕에도 아랑곳 않는다. 

가녀린 줄기는 언제 생겨났는지 알길이 없고 꽃이 피어서야 존재를 알  있다. 바람이 불면 코클리코는 새빨간 바람개비가 된다. 꽃향기가 날리기 보다 저 선홍 물감이 점점점 흩뿌려진다.

코클리꽃이 지고나면 이미 여름은 가고 없다

다시 해를 빼고 기다려야 하는가?


RER B, Cité universitaire와 Denfert-Rochereau 사이에 핀 코클리코.








2018.06.10 

도투라지숲 자리에 핀 개양귀비꽃

이 날 출근길에 하도 신선하게 피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퇴근길에 어떻게 되었나 보는데 글쎄 댕강 허리채 잘려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버려져 있었다. 올해 유월은 여느 해와 달리 비가 제법 내린 덕에 개양귀비들이 생생하다. 꽃색은 더욱 진하고 키도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