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샤 (pacha) 2020. 8. 18. 03:41

어제 저녁 6시 반쯤에 집 나간 녀석이 먹을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11시쯤 잘 가는 곳으로 가보았다. 맞은편 아파트 15번지에는 아무 고양이도 없었다. 차 밑을 불빛을 비춰보아도 없다. 보통 있으면 모습을 한 번 보이고 다시 사라지는 놈인데. 어쩌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뭐 곧 돌아오겠지. 그런데 감감 무소식. 자정쯤에 부부가 함께 나가 좀더 넓은 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알레도뇌르까지 갔다. 알레도뇌르에서 국도쪽으로 내려오다가 뭐 고양이가 보였는데. 이름을 부르며 그쪽으로 접근했지만 정말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귀신처럼 잘 사라지는 놈이니까. 혹 보슬이가 아닐 수도 있고. 하릴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오면서 보슬이가 가지 않는 우리 아파트 앞까지 뒤졌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 시간에 한 번 꼴로 먹는 녀석이 몇 시간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으니... 새벽 세 시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마도 피곤기에 절어 곯아떨어졌지 싶다. 보슬이 밥그릇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들어왔느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하면서 물그릇만 들고 들어갔다.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 딴 집에 들어가서 안 오는 게 아닌가? 우리집이 제 집인양 매일 같이 와서 먹을 걸 내노라고 하고 낮잠도 늘어지게 자는 폼(pomme)처럼. 아니면 지하실에 갇혔나.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자. 언젠가는 헤어질 운명인데... 

 

7시 반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 앞 동쪽을 먼저 수색했다. 아래는 긴 추리닝을 입었지만 위는 반소매 티를 입은 상태였다. 19도라 한기가 느껴졌다. 20번 국도변까지 한 바퀴를 살펴보고 집으로 들어와 윗도리 긴팔 추리닝을 입고 다시 나갔다. 공과대학 건물쪽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흘긋해보고 아예 건물 안쪽으로 잠시 들어가 보았다. 그쪽은 영역이 아니지만 혹 알아. 눈으로 슬쩍 훑어보고 도로 나왔다. 뒷 동 아파트와 철길 사이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쪽은 빨리 지나쳐서 알레도뇌르로 나왔다. 우선 왼쪽으로 돌아 샤토쪽으로 몇 십미터 울타리쪽을 뒤져보았다. 딱히 몸 술길 만한데가 없으니... 몇 년 전에는 여기까지 온 걸 목격했으니까 혹시나 하고 울타리를 따라 살펴본 거였다. 다시 발걸음 돌려 아랫쪽으로 내려왔다. 옆 아파트 단지 가장 끝 건물에서 야트막한 담벼락과 쥐똥나무 울타리 틈바구니 좁은 공간에 보슬이가 있지 않나. 보슬아 보슬아 집에 가자. 불과 6-7미터 거리여서 다가갔는데 어느 새 흔적없이 몸을 감추고 말았다. 혹 헛것을 본 건 아니겠지. 분명 녀석이 맞았는데. 야속하게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어휴. 살아 있으면 됐어. 한 구석에 녀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일말의 의구심을 갖고서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쪽에 샴 고양이가 있다는 걸 알아서이다. 보슬이보다 한참 어리고 등치가 작은 녀석이라 혼동한 건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다시 기다렸다. 잠을 설쳐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쿵! 어디서 바람같이 녀석이 창문을 뛰어올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홉 시 반.

들어오자마자 몇 순배를 먹는지 모른다. 끝내는 생선까지 달라고 우겼다. 어제 저녁에 안 먹은 거 내놓으라는 식이다. 사료만 네 번인가 먹고 생선까지 먹더니 다시 나가겠다고 창문가로 냉큼 옮겨간다. 바깥에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 흥분기를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먹고는 창문이 열렸나 이 방 갔다 저 방 갔다 하였다.

 

드디어 샬의 [유명한 프랑스 여인들]을 다 읽었다. 우리 소설책이라며 약 2천 페이지 분량이었다. 마지막에 가서 저자의 목소리로 반응이 좋으면 후속편을 내겠다는 알림이 있었으나 샬이 쓴 후속편은 없고 다른 사람들이 후속편을 쓴 것은 있는 모양이다. 연작소설치고는 짜임새가 완벽하다. 복선을 깔고 폭로하는 재주는 가히 일품이다. 촘촘하게 사건을 엮어 실마리 하나가 풀리나 싶으면 또 다른 미궁이 나온다. 철저한 등장 인물의 시점을 취하면서 이야기에 비밀을 많이 숨기고 조금조금씩 갈등을 고조시키고 숨겨진 비밀을 다양한 시각으로 밝혀준다. 특히 팜 파탈인 실비를 죽음으로 몰고간 갈루앵의 난봉질을 여러 각도로 보여준다. 갈루앵은 친구 부인과 정을 통하는데, 두 사람이 몸을 섞은 현장을 목격하는 남편 데프랑의 시점과 나중에 가서 갈루앵은 실비와 데프랑이 부부 사이인 줄 모르고 했노라고 발뺌한다. 갈루앵은 아무리 꼬드겨도 넘어가지 않자 실비를 의도적으로 바늘에 찔려 피를 흘리게 하고 상처를 응급처치한 다음 자신의 피와 실비의 피를 섞은 리본을 목걸이에 달면서 실비가 스스로 몸을 맡기도록 나쁜 술수를 동원한다. 보디 가드인 모랭 부인과 하인들을 따돌리기 위해 약국에서 마약을 제조하여 닭고기 요리에 섞어 먹이는 와중에 모랭(Morin) 부인이 목숨을 잃는다. 갈루앵은 목숨까지 앗아가는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쾌락을 추구하고 범죄행위가 드러나자 수도원으로 잠적한다. 처남 매부간이 되는 뒤퓌(Du Puis)가 자신의 처남을 변호하듯 되풀이하여 갈루앵은 실비와 데프랑이 결혼한 사이인줄 몰랐다고 밝힌다. 실비한테 반하면 남자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한테 달겨든다. 이미 크랑브(Cranves) 부인의 유부남 하인 발레랑(Valeran)이 그랬고 갈루앵(Gallouin) 데프랑(Des Frans)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기로 된 크랑브 부인의 집사 가로(Garreau)는 감옥에서 죽는다. 발레랑도 실비한테 돌진하기 위해 자신의 부인을 살해한다. 나아가 연적인 데프랑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다가 도리어 자신이 데프랑한테 허를 찔려 살해당한다. 실비는 흑마술 같은 비법에 걸려 갈루앵한테 몸을 맡기지만 끝까지 몰래 결혼식을 올린 데프랑한테 사랑의 맹세를 한다. 데프랑이 지방의 영지관리를 위해 4개월을 비운 사이 다른 남자한테 넘어가고도 실비는 여전히 데프랑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속세와 완전히 인연을 끊고 수녀원에서 죽는다. 데프랑은 실비한테 수녀원에서 나오고 싶으면 나와도 된다고 선택권을 부여했는데도 실비는 자신의 미덕이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니면 속죄 행위로서 수녀원에 뼈를 묻는다. 실비는 단선적인 성격의 인물이 아니고 복합적인 성격에다 뚜렷한 주관을 갖춘 여성이다. 그야말로 팜 파탈(femme fatale)! 미덕의 화신인 콩타민 부인 안젤리크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두 이름 다 네르발이 재활용한다. 셀레니(Célénie)도 마찬가지. 논문쓸 때 이 작품을 읽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여행일기]도 마찬가지. 이유는 단 한 가지. 시간이 없어서.

샬의 소설에서 17세기 중후반 몰락하는 귀족계층(전통적인 무인 귀족)과 상승하는 부르주아 계층(금융과 법조계), 재산 상속, 가부장적 권위,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차이로 인한 결혼의 걸림돌, 출생의 비밀 등 결혼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불거진다. 젊은 세대들의 기성질서에 반기를 드는 문제까지 세기는 달라도 인간세상에 늘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