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세무소에 갔으나...
알람을 맞춰두고 잤다. 7:30
보통 때 같으면 일어날 수 없는 시간대라 강제로 알람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보슬이가 밤에 적어도 세 번은 나가기 때문에 쪽잠을 자는데 이 시간은 그래도 좀더 길게 잘 수 있는 때인데 일어나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녀석이 깨우는 시간은 한 시나 한 시반, 두 시반 아니면 세 시, 네시 반 아니면 다섯 시, 어떤 때는 일곱시.
제기, 관공서 갈 때면 괜히 움츠려든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이제 의사소통에 어려움은 별로 없는데도 이상하게 부담스럽다. 체류 초기에는 의사소통 자체도 큰 부담이었다.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하나. 언어능력보다는 일단 자신감이 중요한데 처음 벌어지는 상황은 늘 설명하기 힘들다. 들어본 적도 없고 말해본 경험도 없는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나.
체류증 사무실 갈 때가 가장 심한 경우지만 행정적인 사무와 관련된 특히 돈과 관련된 사무실을 찾을 때도 가슴이 옥죄어오기는 마찬가지.
부지런을 떨어 간단히 아침을 챙겨먹고 옷을 챙겨입고 우산을 들고 나섰다. 비가 제법 내렸다. 거리도 거리지만 비 때문에 걸어가는 것은 안 되는 상황. 192번 버스 정류장, 한 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오래 기다리지 않으면 온다.
쏘 시청에서 내렸다. 시청보다는 더 위에 있는 세무소로 걸어갔다. 나랑 같은 정류장에서 탄 여자가 옆 문으로 새어 들어갔다. 직원이군.
볼일 보러 온 사람이 굳게 닫힌 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문 열 때가 되지 않았나. 08:45부터라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45분은 되려면 1분 정도 남은 시간. 재수가 좋네. 시간 딱 맞춰 도착하다니...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윽고 우산을 들고 황토빛 코트를 입은 날씬한 여자가 나타나서 내 앞에 온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을 받지 않아요. 재택근무라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난 아주 급해요. 어떻게 연락을 하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약속을 잡으세요. 어쨌거나 사무실은 닫혀 있어요.
둘이서 한참을 실강이 아닌 실강이를 벌였다. 볼일 보러 온 여자는 목청을 높여 불만을 토로했고 직원은 시종 나즈막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대꾸를 하였다. 내 차례가 왔다.
지원금 관련 알아보려고 왔는데...
정부 지원금 관련은 이쪽에 있어요. 언제 다시 열지는 모릅니다.
어쨌거나 전화해서 강력하게 요구하세요.
마지막 말은 몇 번씩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재택근무면 일 제대로 안 한다는 뜻. 그래서 서류 처리가 늦어지나.
출입문에 안내문이 몇 개 붙어 있었다. 필요한 두 개를 사진을 찍었다.
아무 소득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다.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무리였다. 어떻게 하나. 우체국이라도 한 번 다시 들러보나. 버스 정류장 전광판을 한번 둘러보고는 우산을 받쳐들고 걸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사무실 바같에 이미 너댓이 줄서 있었다. 포기.
시내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샹장이라도 보자. 로타리 횡단보도 가까이에서 한국사람인듯한 사람을 마주쳤다. 마스크를 낀 터라 서로 바로 알아보지는 못하고 얼마 지나 서로 알아보았다. 김 이사님.
젠장 지원금이 나오지 않아 세무소로 왔는데 닫혀 있네요. 벌써 두 달치를 못 받았거든요. 이게 나와야 먹고 사는데...
내 푸념을 늘어놓다가 또 보자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오샹에 들어갔다. 중국 배추가 있길 대 국끓이용으로 한 포기 샀다. 후식 semoule au lait 네 개 짜리, 보슬이 고기 먹이 그리고 pitch 쇼콜라 빵 해서 딱 네 가지를 샀다. 옛날 살던 데로 가볼까 하는 생각에서 일부러 더 많이 사지 않았다. 짐 될까봐서. 게다가 바이 씨가 수퍼 주인인데 장 본 것을 잔뜩 들고 들어가기는 그렇지.
오샹을 나섰는데 비는 더 세게 내렸다. 안 되겠다. 예전 집은 포기다.
다시 192번 정류장으로 갔다. 7분 기다려야 한다. 버스 표 두 장을 쓰고 기껏 오샹 장을 보고 가네. 그렇게 일찍 서둘렀는데. 뭐 여기서는 일이 제 맘대로 흘러갈데가 없지.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허무했다.
재택근무를 해서 전화로 문의하려고 했으나 실패.
결국 메일을 썼다.
프낙은 내가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쪽이라 전화 연락이 쉽게 되어 소포 받는 주소를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