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누나네 집 가까이 있는 이발소에 갔다. 오며가며 푸르고 희고 빨간 띠가 회오리로 돌아가는 간판을 여러 번 보았다. 간판들이 워낙 수도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지라 정작 상가건물에서 이발소를 찾는데 꽤 해매었다. 면도를 하려고 들렀다가 내친 김에 이발까지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가방을 싸면서 면도기만 챙기고 충전기를 빠뜨렸다. 삼 주를 버텨줄까? 이삼일에 한번씩 써야하는데...
커다란 안락의자가 세 개 놓이고 이발사를 돕는 중년의 여종업원이 둘이다. 흰수건이 널대에
잔뜩 늘려 있고, 올드팝스가 흘러나오는 에프엠을 틀어놓았다. 요즘은 이발소가 사양길에 접어들어서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나마 이 동네가 은퇴한 부유층
어르신들이 많아 유지가 돼요. 이발사 자격증은 주로 바리깡으로 드륵드륵 미는 미용사완 다르죠. 다행 안마 서비스가 없다. 칼로 하는 면도라고 전기면도기보다
깨끗한 건 아니지만 실로 오랜만에 이런 면도를 받게 되었다. 피부 마싸지도 해주었다. 물론 비용은 미용실의 몇 배다. 이발기량이 뛰어나다고
주장한 것과 딴판으로 모양은 영 아니었다. 가위질로 주로 자른다고 장땡이 아니다. 모양을 잘 내어야지! 담에 면도하러 또 올게요. 면도 시간이
너무 걸리기도 하거니와 의외로 면도기 충전이 오래 갔다.
분당에는 노인들이
많다. 은퇴한 노년층이 어디고 보인다. 전철에는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식당에 가면 여성들이 압도적이다. H형과 양재역 지하상가의 유명하다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가까이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손님들 가운데 젊은층보다 중장년층이 더 많다. 게다가
거의 여자! 그새 판도가 많이 바뀌었군! 평균수명이 늘고 일찍 은퇴해서일까?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면 전철에는 딱 두 부류밖에 없다. 젊은이들과
어르신들. 언제부턴가 노인네를 말할 때 어르신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지. 역시 공경하고는 거리가 먼 얄팍한 존칭법이다.
한국가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사우나다. 역시 찜질방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동네 목욕탕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야했다. 찜질방이 맘에 들지 않아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목욕탕이 자취를 감추어서 동네 목욕탕의
사우나를 가지 못했다. 삼 주 동안 강화 엠티를 마치고 온천간 게 전부다. 동네목욕탕도 이발소처럼 이젠 추억의 장소가 돼버렸다.
한국와서 한 가지 놀란 점은 말투 아니 정확히 말해 발성법이 달라진 거다. 귀에 거슬린다든지
속되다든지 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일어난 변화다. 이미 관광객들을 통해 느낀 바지만 현장에서는 바로 알아차렸다. 말을
맺을 때 한 박자를 더 길게 늘어뜨리는 현상이다. 가세요가 아니다. 가세요오~ 마지막 앞 음절을 높이면서 늘였다 내리면서 묘한 멜로디를 만들며
말을 맺는다. 특히 젊은 여자들의 말투가 그렇다.
말버릇 가운데 또 한 가지 눈에 띈 현상은 쓸데없는 존칭법이다. 상대편 사람에 대해 존대법을
쓰는 경우야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우스꽝스럽게도 사물을 언급할 때도 존칭법이 뒤섞여 나온다. 상대를 존대하려는 생각보다는 어투를 존칭으로 칠갑해서
공손한 어투를 만들겠다는 어줍잖은 말버릇일테다. 끝맺을 때만 존칭어미를 쓰면 될 것을 앞이고 중간이고 없이 존칭어미를 갖다붙여 말을 내뱉는다.
아이고 젊은이고 중년이고 노년이고 구분도 별로 없다. 어떤 표현이 뜨면 너나할 것 없이 품위없는 줄도 모르고 곧잘 쓴다. 한국의 공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말의 오염이 아닐까.
한국에서 칠 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몇 번 변한다! 더욱이 자연 환경은 더더욱 그렇다. 산자락을 끊어 큰 도로를 내고, 산기슭이나 들판은 택지로 개발 당했다. 야트막하던 구세대 아파트들은 하늘을 가리는 초고층 아파트로 새롭게 변신했다. 서울과 교외로 연결하는 전철 노선이 몇 개나 새로 생기고 연장되기도 했지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엄청나게 넓은 순환도로와 강변도로가 새로 생기고, 서울로 들어오는 고속도로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한편 서울 외곽을 연결하던 교외선들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구실을 앞세워 특별 관광열차나 가끔 다니는 할일 없는 추억 속의 철도가 되었고, 대신 승용차 전용도로가 시원스레 뚫렸지만 출퇴근 때면 여전히 교통량을 감당하기 벅차다. 이러다간 남아도는 땅이 있을까 걱정된다. 서울과 그 주변은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으면 도로가 들어선다.
시간의 흐름 앞에 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다. 조카들이 결혼해 그 자식들이 무섭게 커가고 부모 세대들은 거개가 후손들한테 자리를 물려주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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