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기원전 4600)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파리의 역사에 초점을 둔 시립박물관으로 마레지구에 있다. 코냑제 박물관이나 보쥬광장, 빅토르 위고의 집과 지척이다. 파리 시립 박물관으로는 가장 오래된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건물은 두 개의 저택을 차지하고 있다. 1548년에 지어져 17세기에 프랑수아 망사르가 개조하고 특히 1677년부터 1696년까지 서한문으로 유명한 마담 드 세비네(Madame de Sevigne)가 살았다. 1880년에 문을 연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여러 차례 확장되는데, 1989년부터는 1688년에 피에르 뷜레(Pierre Bullet)가 지은 르펠르티에 드 생파르고(Le Peletier de Saint-Fargeau) 저택까지 아우러게 되었다. 2000년에 복원한 오랑주리에 선사시대와 갈로로맹 시대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파리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약 6십만 점에 달하는 소장품이 100개가 넘는 전시실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역사 박물관이지만 아주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고고학적인 유물에서 옛 기념물의 모형, 간판, 사라진 건물에서 떼어온 실내장식, 역사적이며 일상적인 풍속화, 파리의 유명인사들의 초상, 유명인사들의 일상 생활의 증거물이나 기념물. 혁명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장품들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프랑스 대혁명기의 관련 자료들을 보면 현장감이 되살아난다. 바스티유 감옥과 단두대의 모형, 루이16세 가족들을 둘러싼 생생한 자료들을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루이16세 가족의 머리카락을 보관한 유품을 보면 가슴이 짠해진다. 루이16세가 처형되기 전 가족들과 헤어지는 장면의 그림이며,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오르기 전 두손이 포승줄로 묶인 모습의 크로키를 보면 단죄나 정의에 앞서 죽음에 처한 한 인간의 운명이 먼저 떠오른다. 처형장에 떼로 몰려든 군상들을 볼라치면 집단 광기의 열기도 전해진다. 그 광기 속에는 옳고 그름, 분노와 저항은 없고 왠지 과도한 집단 폭력만이 판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혁명의 불꽃은 그 어떤 불꽃보다 더 아름답다. 그런 불꽃이 없었더라면 혁명의 과도함을 수십 수백 배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이 끄덕 않고 길이 보존되었을 터다.
프랑스는 1789년 7월 14일 압제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날을 국경일이라 부른다. 일제히 프랑스 전국 각 도시별로 불꽃놀이 축제와 공공 무도회가 열린다. 혁명의 정신을 신명나는 축제판으로 되살린다.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을 모신 국립묘지 팡테옹에 1번 타자로 들어온 사람은 미라보(Mirabeau)였다. 미라보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왕당파와 타협한 게 들통이 나면서 팡테옹에서 쫓겨났다. 결국 두 번째로 들어온 볼테르가 1번 타자가 된다. 그러면 볼테르의 뒤를 이은 2번 타자는? 스위스 주네브 출신의 장자크 루소이다. 여성으로 유일하게 팡테옹에 들어온 이는 퀴리 부인이다. 지난 대통령 사르코지 정권 때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카뮈도 들어올 뻔 했는데 그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는 팡테옹에 묻히는 걸 원하지 않았으리라며 거절한 바 있다. 2015년 올랑드 정권에서 세 명의 여성을 입성시킨다. 나머지는 다 이장을 한 경우인데 1885년에 숨을 거둔 빅토르 위고는 죽자마자 제발로 걸어들어온 유일한 사람이다. 빅토르 위고는 작가로서도 유명하지만 사형제 폐지를 위해 애를 많이 쓴 사람으로도 기억할 만하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을 읽어보라.
팡테옹 쿠폴에 본업이 의사고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푸코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지구의 자전을 증명해보인 푸코의 진자가 설치되어 있다. 직업 기술 박물관에도 푸코의 진자가 설치되어 있다.
바스티유 감옥의 해체를 맡은 피에르 프랑수아 팔루아(Pierre-Francois Palloy : 1755-1835)가 잔해를 써서 축소 모형을 여러 개 제작하여 장관들이나 83개의 도청, 루이16세 그리고 외국인사들 그 중에 와싱톤 미국대통령에게 보낸다.
원형의 성탑으로 철옹성을 만든 바스티유 감옥도 악명만 아니라면 건축적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중세의 원형 성탑만 보면 왜 그리 맘이 끌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또 다른 모형을 보자. 일단 들어가면 살아서 걸어나올 수 없었다는 악명 높았던 바스티유 감옥의 전모를 보여주는 모형이다. 그래도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몇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네르발이 쓴 역사소설의 주인공이 된 아베 드 뷔쿠아(l'abbe de Bucquoy). 그는 톱으로 감방의 창살을 자른 뒤 미리 꼰 밧줄을 타고 감옥의 벽을 내려와 밖으로 도망친다. 네 사람이 작당했지만 한 사람은 뚱뚱해 자른 창살 사이로 빠져나오지도 못해 밧줄조차 타지 못하고 다른 두 사람은 밧줄을 타고 내려온 다음 도망가는 방향을 잘못 잡아 보초한테 잡히고 만다. 결국 탈옥의 귀재 아베 드 뷔쿠아만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도 도적떼들이 '라포르스'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테나르디에가 간수에게 마약성분이 든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잠에 곯아떨어지게 한 다음 천장을 뚫고 지붕을 뚫고 감옥을 빠져나오지만 폐허가 된 옆 건물의 벽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다가 아들 가브로슈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유를 찾아 탈옥하는 얘기는 늘 극적이다. 아무리 가두고 지켜도 탈출하려는 의지 앞에서는 당할 수가 없나 보다.
축소판 단두대. 기요탱이라는 의사가 만들었는데 기요탱도 기요틴의 제물이 되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저 무시무시했던 살상도구도 작게 만들어 놓으니까 장난감 같아 보인다. 사형집행인이 서툴러서 몇 차례 걸쳐 칼날을 내려쳐서야 목을 자른 경우도 더러 있었다. 영국의 교수형 집행에서도 마찬가지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파리의 박물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댕 박물관 (0) | 2014.04.20 |
---|---|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0) | 2013.08.29 |
18세기풍 박물관 코냑제(Cognacq-Jay) (0) | 2012.11.27 |
그랑 팔레의 호퍼 전시회 : 2012년 10월 10일 - 2013년 1월 28일 (0) | 2012.10.19 |
로댕 박물관 정원2 (0) | 2012.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