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저자한테는 무료로 숙식까지 제공했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불살라졌다. 이 전설적인 도서관을 641년에 불지르게 한 이는 오마르 칼리프다. 자기 이름을 영원히 남기려 했다나 어쨌다나... 불탄 도서관에 이름을 새길 수는 없었을 테고, 역사 공간에 더럽게라도 기록되고 싶었을까. 두 번째 도서관 파괴는 390년에 이교도와 그리스도교도 사이의 싸움 때였다. 정작 이 때 도서관을 작살낸 이는 아랍인이 아니고 그리스도 교도였다. 그럼 맨 처음 도서관을 박살낸 주인공은? 기원전 47년에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한 로마 황제 세자르(카이사르)다.
2002년에 비블리오테카 알렉산드리나(Bibliotheca Alexandrina)가 새롭게 문 열었다. 도서관이 불타도 도서관은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선다. 어디 도서관 뿐이랴. 베네치아의 페니체 오페라 극장을 보라. 잿더미에서 또 다른 페니체가 되살아 났다. 비블리오테카 알렉산드리나도 퐁피두 센터처럼 도서관이면서 박물관이고 전시장이다. 새로 선 보인지 얼마 되지 않아 알렉산드리아의 관광,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소문이다. 빅토르 위고는 쇠락해가는 고딕 성당을 바라보며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 하고 예견했다. 여기서 이것은 15세기에 발명된 인쇄술이고, 저것은 건축이다. 이리하여 [노트르담 드 파리]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되살려 낼 수 있었다.
퐁피두 센터는 현대판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을 꿈구며 지은 건물. 퐁피두
대통령의 착상부터가 훌륭하다. 모든 문화를 한 공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복합 문화 센터. 도서관은 물론 영화관과 현대 미술관, 음악 교육기관과
산업기술 창조관도 있다. 어린이를 위한 아틀리에도 있고, 1층과 지하 일부는 현대작가의 전시 공간으로 쓰인다. 그야 말로 모든 이를 위한 자유의
공간, 꿈꿀 수 있는 공간.
어찌 보면 정유공장을 떠올리는 괴상망측한 건물. 온통 둥그런 관들이 흉측스럽게 튀어나온 쇳덩어리. 내장이 바깥으로 나와 있고, 외관은 현대조각인 양 몇 가지 원색 페인트로 칠갑되어 있다. 초록, 노랑, 빨강, 파랑은 대체 뭘까? 초록은 유체 통로, 노랑은 전선 통로, 빨강은 동선, 파랑은 공기 통로다. 기둥과 들보는 하얀 배경색을 구축한다. 보수공사 때 쉽게 알아보려고 색상 구분을 했을지 모르겠다.
1971년에 공모작 681개 가운데 30대 초반의 이탈리아 출신 렌조 피아노와 영국 출신 리처드 로저스의 작품이 선정된다. 1998년에서 2000년 사이에 진행된 보수공사 때는 렌조 피아노만 간여한다. 그 동안 도서관은 바로 옆 거리의 ‘시계 동네’로 옮겨가서 계속 문을 열었다. 77년에 문열 때 하루 이용객을 5천 명으로 잡고 건물을 지었는데, 예상 인원보다 훨씬 웃도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어쩔 수 없이 일부 개조를 한다.
수리를 마친 2000년부터는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는 건물 안쪽에 따로 설치된다. 베네치아의 총독궁 3층은 화려한 회의실의 연속이다가 그 바로 아래쪽이 감옥이다. 도서관 열람객들만 격리시켜 감옥으로 밀어넣으려는 속셈일까. 건물의 뒷쪽 실내를 통해 2층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는 컴컴한 조명 때문에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무슨 소굴로 들어가는 통로 같다. 올라가는데도 추락하는 기분이다. 고대 이집트 사제의 입문식에서 빙빙 돌아가는 바퀴는 아무리 기어올라도 자꾸만 컴컴한 물웅덩이 아래로 빠져들게 되어 있었다. 도서관을 다른 공간과 분리시킨 것은 개조가 아니라 개악이다. 이렇게 도서관은 다른 공간과 격리되고 만다. 2층의 인문과학이 3층으로 바뀐 것은 그리 탓할 바는 아니다. 그 전에는 중간층에 기본자료실과 화장실이 자리잡고 2층이 인문과학 3층이 자연과학이었다.
퐁피두 도서관은 남녀노소 누구든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 굳이 공짜라고 한 것은 돈을 내고 들어가는 도서관이 있기 때문.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그렇다. 게다가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도서관증을 만들 수 있는 도서관이 많다. 예를 들어 대학도서관은 대학생증이 있어야 도서관증을 만들고 책을 빌릴 수 있다. 퐁피두 도서관은 도서관증이 따로 없다. 들어가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5월 1일 노동절을 빼면 연중 무휴이고, 정기 휴관일은 매주 화요일. 주중은 12시부터 토, 일요일과 공휴일은 11시부터 문을 열어 저녁 10시에 문을 닫는다. 그야말로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도서관이다. 문을 좀더 일찍 열면 좋겠는데… 퐁피두 도서관 서가는 개가식이어서 마음 대로 책을 뽑아 볼 수 있다. 소르본 도서관과 생쥬느비에브 도서관은 폐가식이다. 퐁피두 도서관에는 책 뿐만 아니라 CD롬, 음악 CD와 영화 CD, 마이크로 필름, 어학 실험실도 있다. 또 웬만한 잡지는 다 구비되어 있다.
인상적인 풍경은 거지들이 둘러앉아 여러 나라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 그들은 도서관에서 화장실도 이용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어쩌면 그들에겐 도서관이 첫번째 보금자리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이 문을 여는 낮 12시에 출근하여 저녁 10시에야 퇴근하는 곳이고, 비를 피하는 확실한 지붕도 있고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도 있으니까.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도 예외 없이 책가방 대신 전 재산이 든 비닐 봉투를 들고 일반 열람객들과 함께 줄을 선다. 세상에 거지들이 몰려드는 도서관이 어디에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유식한 거지는 퐁피두 도서관에 출퇴근한다. 퐁피두 도서관에 가장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열람생들은 바로 이들이다. 언제 가도 낯익은 몇 명의 베테랑 열람자를 꼭 마주친다.
98년 이전이 참 좋았다. 일반 관람객과 함께 유리 튜브 안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빠져 나와 5, 6, 7층의 미술관으로도 갈 수 있었다. 7층 카페테리아에서 음료수도 마실 수 있고, 파리 시내를 굽어보며 머리를 식힐 수도 있었다. 개조한 다음에는 도서관에서 미술관으로 바로 가는 문이 폐쇄되고 만다. 미술관가는 관람객들은 도서관 책벌레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고 싶어 유리문을 두드리며 툭툭 치기도 한다. 투명해도 벽은 벽이라구요. 그리고 여긴 책벌레들의 전유 공간이에요.
왼편으로 온통 검은 옷이나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스트라빈스키 분수가 온갖 재주를 부리며 물을 뿜고, 그 뒤로 고색창연한 생메리 성당이 우두커니 버티고 있다. 조금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보부르 카페가 나오고, 그 옆쪽에 공중 목욕탕 입구도 보인다. 눈을 들어 먼 쪽을 굽어보면 파리 시청, 노트르담 성당, 포롬데알이 나타난다. 저 멀리에펠탑도 보인다. 오른쪽으로 더 돌면 라데팡스의 빌딩숲도 보이고, 몽마르트 언덕의 성심성당도 나타난다.
어쩌다 아는 이를 만나면 바깥쪽 난간 통로에 나와 이동식 커피행상에서 커피를 사들고 나누던 학문적인 담화시간은 참 즐거웠다. 물론 이 난간 통로는 지금도 그대로다. 물론 화장실 옆에 카페테리아가 생겨 난간 통로에 이동 커피는 사라졌다.
요즘 들어 새로 선보인 풍경은 도서관 안에 들어와 사는 참새. 열람실에서 음식 먹는 게 금지인데도 바삭거리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과자 부스러기를 청소하려고 온 참새인지 유식해지려고 공부하러 온 참새인지 모르겠다.
퐁피두 도서관의 복도 난간에서 앞마당을 바라보며 떠올린 생각은 유토피아다. 찐득거리는 여름날 내가 다닌 대학의 정문에서 도서관까지 지하통로로 걸어가는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잿더미로 변한 페니체 극장이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났다. 몇 번씩 불타고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다시 지어진다. 암반 위에 지은 샹티이 성은 네 번 허물어지고 다섯 번째는 르네상스풍으로 화려하게 일어선다.
망각은 기억을 살찌운다. 신비한 상어가죽이 다 쪼그라들기 전 망각으로 추억의 성을 쌓아보자. 한때는 우체국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도 했는데, 이젠 인터넷에서 잊혀진 기억들을 다 건져올린다. 꽃분홍 편지지가 담긴 연애편지를 전해줄 우체부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잊어버린 정보는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검색하면 그냥 다 되살아나니까. 자기 소개는 아이디를 달고 아바타를 앞세우고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전달하면 된다.
그럼 우리 가면쓰고 가명으로 채팅 한번 해요.
퐁피두 앞마당은 늘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마술이며 연주, 노래와 춤 판이 벌어진다. 초상화 그리는 화가들이나 자신이 직접 만든 수제품을 파는 장삿꾼들도 분위기 만드는데 한몫을 한다.
한데 [노틀담의 곱추]에서 거지들이 떼지어 우글거리던 곳이 바로 퐁피두 센터가 들어선 이 동네이다. 중세 때부터 거지들의 아지트였던 이 동네의 이름이 '아름다운 마을'(Beaubourg)이라니. 그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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