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는 에도코에서 먹는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 비가 와서 우산 없이 멀리갈 수 없을 때, 또 너무 피곤해서 몇 발짝이라고 아껴야 할 때. 루브르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데고 가장 오래 다닌 단골집이다. 에도코의 마스코트는 홀서빙 메니저 아줌마다. 홋가이도 출신으로 이미 머리가 히끗히끗하기 시작했지만 머리를 여고생처럼 두 갈래로 땋아 소녀처럼 귀여운 인상이다. 어느 때부터 짧게 컷하고 파마를 해 스타일을 바꾸고 말았다! 일본여자 특유의 간드러진 말투가 아니라 좀 퉁명스런 말투지만 마음씨는 착하다. 아담한 체구에 정감이 간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사장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어쨌든 이 여인이 에도코를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처음에는 덴뿌라 우동만 줄창 시켰다. 에도코에서 우동을 재발견했다! 국물에 기름이 동동 뜨기는 해도 면발이나 국물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분명 인공 조미료도 들어가 있다. 먹고 나면 묘한 갈증을 느낀다. 덴뿌라 네 개 중 새우튀김이 좀 걸리기는 해도 먹을 만하다. 몇 해 전까지 난 새우는 거덜떠 보지 않았다. 특히 제사 때 단골 부침개였던 고구마전을 맛보면서 고향의 맛을 떠올리곤 한다. 달콤하니 연한 고구마전을 먹는 기쁨은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때로 고구마전이 다른 야채전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아쉽게도 고구마전이 자리를 감추고 말았다. 고구마가 그렇게 귀한 재료라서 그런가? 대신 가지전이 대신하였다. 고구마전이 나오지 않은 무렵부터 덴뿌라 우동을 차츰 멀리하게 되었다. 다행 어느 때부터인가 고구마전이 다시 선보였다.
덴뿌라 우동에 물리면 야끼도리를 시킨다. 쇠고기를 덮어 씌운 치즈 꼬치, 쇠고기 꼬치와 닭꼬치이다. 역시 꼬치는 닭꼬치가 최고! 가끔 닭꼬치를 덜 구워줄 때가 고역이다. 허연 살이 보이면 씹기도 전에 맛이 달아난다. 이런 일이 자주 생기면서 바싹 구워달라고 미리 주문한다. 야끼도리에 발라주는 달짝지근한 간장소스가 역시 내 입맛하고 잘 맞지 않지만 그래도 먹을 만하다.
그 다음은 테리야끼다. 연어나 쇠고기 구이를 시킨다. 역시 뿌린 간장이 달짝지근한 게 흠이나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발에 나오는 야채 샐러드가 양이 많아 대신 미소국을 두 개 먹는다. 그렇다고 야채 샐러드가 맛이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단지 양이 많아 부담스럽다는 뜻.
아주 드물게 소고기를 넣은 니끼니쿠 우동을 먹을 때도 있다.
번질나게 다닌 결과 확실한 단골이 되면서 녹차를 서비스로 내놓는다. 물론 1유로를 매번 팁으로 남긴다.
혼자 가면 왼쪽 바 끝자리를 차지한다. 누군가와 같이 가면 탁자 자리에 앉기도 하고 바 자리에 나란히 앉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로 서빙하는 친구들과도 아주 낯이 익다. 내가 주문하면 녹차 서비스와 함께 자연 미소국을 둘 내온다. 벌써 몇 번째 바뀐 중국 유학생들은 늘 친숙하다. 제빵 공부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아주 붙임성 좋은 친구만은 못해도 다 괜찮다. 키 자그만하고 사교적이던 그 친구로부터 몇 마디 중국말을 배웠다. 똑 바로, 오른쪽, 왼쪽. 내가 터득한 숫자를 계산할 때 중국어로 말하는 귀여움도 토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뒤를 이어 다른 중국 학생이 들어와 일한다.가끔 사라졌던 중국 친구가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공부를 아직 덜 마쳤다고... 얼굴이 퉁퉁하며 정감이 가고 조용한 여학생이 오랜만에 얼굴을 다시 비추었다. 중국 남학생도 상냥하지는 않아도 아주 순진하게 생겨 성실하게 일을 잘 한다. 가는 몸피에 얌전하게 생긴 젊은 일본 아줌마는 인사성이 참 좋다. 꼭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일본식당들이 다 그렇듯이 자리가 아주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식탁과 의자가 아주 다닥다닥 붙은 것만은 아니다. 이 집에 들어서면 낯익은 물건이 하나 있다. 아주 오래된 오디오. 자리가 좁아 스피커와 콤포넌트를 포개듯 바 옆쪽에 놓아 두었다. 대신 스피커 음질이 괜찮다. CD를 돌릴 때도 있고 Chérie FM을 켜둘 때도 있다. 가끔 일본 가요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귀에 익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노래가 들릴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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