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넘어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자!

파샤 (pacha) 2018. 2. 26. 07:32

어제(18.02.23) 시간을 떼울 양으로 정말 오랜만에 프낙을 들렀다. 딱히 책이 있어서가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극도로 나빠진 상태라 사고 싶어도 사는 형편이니. 그래도 무슨 호기를 부린다고 최근에 개발한 단골 프랑스 식당에서 본식에 백포도주 커피까지 마시고 나온 터다! 아무리 계산해도 2월 수입으로는 집세며 주택부금을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런던 여행비는 과외로 나가야 하는데... 잠시 후에 여행사 사무실에 들러면 가이드비를 깎자고 나올테고.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이미 가까워진 레알로 걸어갔다. 런던 상세 지도를 사나? 르몽드에서 소개된 소개 기사를 인쇄해 들고 다니는 책을 사볼까? 우파 논객 사람이 리버럴리슴 정책을 우려하는 에세이라는데... 프낙은 서점이면서 흑색 가전제품 종합판매점이다. 텔레비전, 오디오, 사진기, 컴퓨터와 관련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다. 가운데 서점도 큰 몫을 차지한다. 학위를 마치고 문학관련 책을 사러 가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주로 루브르 미술전문 책방에서 미술책만 줄곧 사들인다. 사들인 책은 안 읽은 게 더 많을 지경에 이르렀다. 읽지 않은 게 아니라 읽다가 그만두었다고 해야겠다. 어쩌다가 종합 서점을 지나치다가 새로 쏟아져 나온 소설을 때면 막힐 듯한 아득함이 몰려든다. 소설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 이젠 전공이 문학에서 미술로 바뀌고 말았다. 맨날 읽는 책이 미술책이니...


정말 번도 가지 않았던 정치 관련 코너에서 르몽드에 소개된 책들을 찾아 훑어보았다. 권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다. 우선 보기에 깊이가 없어보였다. 에세이지 않은가? 마지막에 찾은 알랭 맹크(Alain Minc)의 책만 약간 관심을 끌만했다. 2 쪽도 되지 않는 분량인데 가격이 18유로다. 그까짓 정치평론집이 이렇게 세나! 마음이 바로 사라졌다. 사더라도 영국 여행 다녀와서 사자. 보아야 읽을 시간도 없잖은가. 에라 내친 김에 철학 코너나 둘러볼까. 철학책도 내가 거의 읽지 않은 분야기는 마찬가지. 그래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하는데는 정치나 경제보다 철학을 통하는 낫지 않을까.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자들만 판치는 세상이니... 온통 마크롱 천지다! 지식인들은 다 어디가서 얼어죽었을까? 병신 쪼다로 화석이 되었나?


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을 발견했다. «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기 ». 이게 한때 내 금언이지 않았나! 다른 분야면 몰라도 이 분야 만큼은 나도 대단한 인물이지. 암, 그렇고 말고!

분량도 길지 않고 가격도 싸다. 미국 철학자의 번역서였다. 훑어보다 사기로 결심했다. 양이 많지 않으니 금방 읽을 거야(121쪽이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다. 읽다 그만 두고 얼마던가! 스무 권은 족히 넘을 테다. 읽다가 그만 두고 책을 읽다 보니 쌓아둔 책만 권인지... 그렇다고 내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집중해서 같은 책을 꾸준히 독파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래도 꾸준히 책을 읽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 페이지를 미친 읽다가 관두고 런던 가이드북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런던 출발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사둔 가이드북은 앞만 페이지 읽다 덮어둔 상태다. 리버풀 가이드북은 아예 흘긋 하고 덮고 말았다. 물론 사이 미술책은 여러 해치웠다. 오랑주리 방문한다고 어쩔 없이 새로 사들인 책을 읽지 않을 없었다. 최근에 루브르 서점에서 사들인 오르세 걸작품 관련 책은 완독은 아니더라도 상당 분량을 읽어내었다. 그러다가 런던 가이드북으로 넘어갔다. 하루면 읽을 있다고 판단하고 «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기 » 역시 제목대로 스무 읽다가 중단했다. 의욕차게 시작은 했지만 언제 맺을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런던 출발이 코 앞으로 다가 왔는데 또 예기치 않은 불미스런 일이 터지고 말았다. 런던 가이드북도 중지다. 그래도 런던 출발은 연기할 수 없다. 기차표가 오래 전에 예매했고 호텔도 예약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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