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넘어서

내셔널 갤러리를 찾아서

파샤 (pacha) 2018. 3. 10. 08:43


별 볼 게 없는 브리티쉬 박물관을 보고 점심 식사 뒤 찾아간 내셔널 갤러리. 눈발이 먼저 맞는다. 작품보러 들어가는가 아님 눈발을 피해 실내로 들어가는가? 신고전주의 짬뽕양식의 건물은 그래도 봐줄 만하다. 그 유명한 트라팔가르 광장이 바로 앞인데 넬슨 동상을 올린 높은 탑과 분수대가 있다. 


탑신이 너무 가늘다. 고전주의 비율도 모르나?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바로 이거다.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물론 내셔널 갤러리에는 훌륭한 작품이 너무나도 많다. 눈이 휘둥그래질 수밖에 없다. 특히 루브르가 많이 소장하지 못한 작가의 뛰어난 작품을 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근데 작품 전시 공간이 아무래도 루브르보다 떨어진다. 브리티쉬 뮤지엄이 그랬듯이 내셔널 갤러리도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은 전혀 없다.


그런데 내셔널 갤러리 전시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돌았는데 이 작품은 나타나지 않았다. 19세기 인상파 그림이 나오면 거의 끝인데...

하는 수 없이 직원한테 물었다. 저쪽 특별전 [반사Reflexions]에 있어요. 제기, 10파운드를 내고 볼 수밖에. 사진도 금지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이 작품만 찍게 되었다. 거대한 붉은 터번을 쓴 반 아이크 자화상은 그래서 찍지 못했다. 슬라이드실에 들어가서 잠시 학예연구원의 설명을 들었다. 아니다. 자막 서비스로 보았다. 보아하니 이 작품도 로제타 스톤처럼 영국 군인이 나폴레옹의 형(한때 에스파냐왕)한테 뺏은 거란다!


두 번째로 보고 싶었던 작품은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 루브르의 두 번째 판형이라 꼭 비교해보고 싶었다. 역시나 초판이 훨씬 뛰어나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루브르 소장이 상대적으로 나은 게 대부분임을 확인했다. 얼굴이나 배경 묘사에서 두 번째 판형은 섬세함이 떨어진다. 우리엘 천사의 옷새깔이 붉은 빛에서 회색으로 바뀌고 오른손이 세례자 요한을 향하던 게 예수를 떠받친다. 마리아, 세례자 요한, 아기 예수는 중세식으로 후광을 두르고 나타난다. 보수적인 성당의 참사회는 두 번째 판형을 선호했다.


세 번째로 보고 싶었던 작품은 우첼로(Uccello : 1397-1475)의 [산 로마노 전투], 1438-1440.

1432년에 일어난 시에나와 피렌체의 전투에서 피렌체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3부작으로 제작한 것으로 한 점은 루브르에 다른 한 점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원근법 적용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격전이 벌어지는 전투 현장 뒤로 풀밭에서 벌어지는 백병전, 그리고 길을 따라 퇴각하는 병사에 이르기까지 거리감이 뚜렷하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1497/8-1543), [대사들], 1533.

[대사들] 역시 내셔널 갤러리의 간판 작품 중 하나로 꼭 보고 싶던 그림이다.

왼쪽 인물은 1533년 헨리8세 궁정의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Jean de Dinteville)로 단검에 새겨진 걸로 보아 29세이다. 오른쪽은 1533년 4월에 런던을 방문한 라브르(Lavour) 주교로 오른 팔꿈치를 기댄 책에 25세로 새겨져 있다. 이 그림은 댕트빌을 위해 그렸는데 샹파뉴, 폴리시(Polisy)에 위치한 그의 집에 걸려 있었다. 댕트빌 왼쪽에 놓인 지구의에 표시된 곳이 폴리시다. 

선반에 놓인 부러진 류트는 종교개혁 시절 유럽의 정치 종교적 불화를 상징한다. 바닥에 대각선으로 떠 있는 찌그러진 해골은 오른편에서 보면 그 자체가 정확한 관점이 되고, 죽음의 상징이 확연해진다. 그림 왼쪽 위 구석에 놓인 은제 십자가는 구원의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한스 홀바인, [에라스무스], 1523. 

저명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측면 초상으로 두 손을 책 위에 대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저작을 암시한다. "로테르담 출신의 에라스무스가 해낸 헤라클레스 업적"이라고 새겨져 있다. 루브르에 소장된 측면 초상에 비해 얼굴에 대한 집중력이 덜하다. 



그외에 볼 만한 멋진 작품들...


히에로니무스 보쉬, [놀림당하는 예수], 1510 무렵.

왼쪽 위 터번에 화살을 꽂은 이가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오른쪽 인물은 도토리 잎을 귀로 달고 목에 침 박힌 개목걸이를 한 채 막대기로 예수를 밀어붙인다. 왼쪽 아래 붉은 두건에 흰 수염을 단 인물이 막대기를 끼워 주리를 틀고 오른쪽 아래 고문관은 속옷을 찢겨 발린다. 신랄한 풍자가 돋보이는 보쉬의 화풍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단순한 색채 구성에 화면 빼곡이 인물을 채워 넣어 극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퀸텐 매시스(Quinten Massys: 1465/6-1530), [추한 공작부인], 1513 무렵.

매시스는 비정상적으로 젊어지려고 하는 욕망을 풍자한다. 뼈가 기형으로 변하는 파제트 병을 앓는 모습을 묘사한다.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1472-1553), [여인의 초상], 1525 무렵.

구체성과 이상화가 동시에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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