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쏘, 쏘공원, 부르라렌

4월2일(목), 메소포타미아의 흥망성쇠

파샤 (pacha) 2020. 4. 2. 16:16

4월1일 프랑스 통계

하루 사망자 : 509

전체 사망자 : 4032

산소호홉기 중환자 : 6017(+452)

하루 테스트 : 2만

꼭 여드레만에 수퍼장을 보았다. 카르푸르로 가는 대신 모노프리로 갔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줄을 서지도 않고 바로 들어갔다. 쏘세지를 빼고는 다 구할 수 있었다. 모노프리를 나와 빵집을 들렀는데 팽오쇼콜라(pain au chocolat)가  없어 크루아상을 사고 바게트 하나를 사들고 되돌아왔다.

저자는 후세인 시절 이라크 석유회사의 의사로 일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끌어모았는지 놀랍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을 주름잡았던 여러 종족이며 지도자들, 대부분 길어보아야 3백 50년을 넘기기 힘든 왕조들이었지만 경우에 따라 엄청난 족적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그 복잡다단한 흥망성쇠의 역사를 아주 다각적으로 때로는 만화경적으로 어떤 때는 현미경적으로 생생하게 서술한다.

 

여러 중심지가 있지만 이들은 공통의 전통을 나누고 지키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큰 틀을 만들었다. 수메르와 아카드, 아모리트, 후리트, 히타이트, 엘람, 카시트, 칼데, 아람, ,.. 기원전 3300무렵 수메르인들이 만들어낸 문자는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매혹적인 발명이었다. 못모양 글자(설형문자, 쐐기문자)를 바탕으로 시대가 바뀌고 종족과 말이 바뀌어도 각 도시별로 숭상하는 신이 있고 잘 조직된 행정체계와 발달된 무역, 그리고 놀라운 과학 지식을 공유하였다. -609년 메디아와 바빌로니아인들한테 거대한 니니베, 니므루드와 아수르를 수도로 한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한다. 그러고 바빌로니아로 축소되어 6백여 년을 더 이어간다. 기원후 74-75년 점토판에 새긴 설형문자를 마지막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그 화려한 막을 내린다. 3천 년 이상 이어온 인류최초의 문명은 그들이 발명해낸 문자와 그들이 쓰던 말과 함께 소리없이 사라진다. 수메르 문자와 아카드 문자는 아람어나 그리스어한테 그 자리를 물려준다. 자신들의 고유한 건축술로 끊임없이 새로 짓고 막대한 제물을 바쳐 관리하던 자신들만의 신전도 새로 들어온 건축양식의 신전과 경쟁하다가 하나둘씩 폐허로 바뀌어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도시는 어쩌면 바빌로니아이다. 모든 나라가 다 수도로 삼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우리한테는 불가사이한 거대도시, 바벨탑(지구라트 : 신전이나 천문관측소), 공중에 걸린 정원으로 우리 기억에 지울 수 없게 인각되어 있다. 그게 나부코도노소르2세(NabuchodonosorII)로 대표되는 신바빌로니아(612-539)로 기껏해야 70년 정도 지속된 왕조다. 신바빌로니아는 사이러스(Cyrus)와 다리우스(Darius)로 대표되는 페르시아 제국(539-331)한테 자리를 내준다. 앗시리아에 이어 이집트까지 정복했던 그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도 얼마 가지 않아 알렉산더 대왕한테 무릎을 꿇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기간도 십 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제국도 둘로 나뉘어져 하나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이집트에 또 하나는 지금의 시리아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셀레우코스 왕조(331-126)다. 다시 이란북쪽에서 내려온 파르타바(Parthava : 126-227)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되돌이킬 수 없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로마제국이 이 지역을 한두 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사산조 페르시아(224-651)가 들어서면 메소포타미아의 화려했던 고대도시들은 폐허로 바뀌거나 보잘것 없는 촌락으로 쇠락하고 만다. 그로부터 19세기 중반(1843) 프랑스 고고학자 에밀 보타(Emile Botta)가 발굴할 때까지 그야말로 텔(Tell)이라고 부르는 사막의 모래 언덕 아래 긴긴 깊은 잠에 빠져든다. 

흔히 말하듯 경제 중심지가 앗시리아 제국의 중요도시에서 새왕조의 신도시들로 옮겨가고 유프라테스 강줄기가 동쪽으로 흐름을 바꾸고 운하시설들은 모래로 메워져서 일까?

 

다른 쪽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 문명이 사라졌을까?

먼저 끊임없이 외부에서 들어온 이민족이 이쪽을 차지하면서 오랫동안 이 지역의 통치할 자신들만의 통치권이 사라졌다.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하고 바빌로니아 왕조로 축소되었다가 페르시아 제국에 흡수되고, 이어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과 아람족의 시리아(셀레우코스 왕조) 그리고 다시 파르타바와 사산조 페르시아, 마지막에 아랍인들이 밀려들었다. 물론 대부분 피를 흘리지 않은 평화적인 정권교체였다. 그렇지만 종족, 언어, 문화, 종교가 서로 뒤섞이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에 이미 구티(Guti), 아모리트(Amorrites), 후리트(Hurrites), 카시트(Kassites), 아람(Araméens)이 들어왔고 그 뒤 칼데(Chaldéens)가 밀려왔을 때만 하더라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아직 젊고 활기가 넘치던 때라 틈입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문화를 지녔기에 그들을 동화, 흡수시켰다. 그렇지만 이미 화려한 문화를 지녔던 그리스의 정복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오히려 영향을 받는 관계로 바뀌면서 읽고 쓰기에 까다롭고 복잡한 설형문자는 자신들마저 버리게 된다. 틈입자들한테 바빌로니아는 몇몇 사제와 식사층만이 전통에 파묻혀 점토판에 과학지식이나 연대기를 기록하는 화석화된 사회에 지나지 않았다. 파괴하거나 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보관되는 점토판은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밀려났다. 기록하기에 힘든 설형문자는 쓰기에 편한 알파벳(페니키아 문자)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요컨대 이들은 창조성과 자발성이 메마른 상태에 이르렀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세 대륙간의 인적이고 물질적인 교역이 활발해지고 사회 변화가 빨라지며, 이성적인 철학과 과학, 회의성이 깃든 종교가 판치는 새 세상이 되었다. 전통에 발이 묶여 정체된 사회는 더 이상 활기를 잃고 죽음의 길로 내닫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문명이 흔적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수메르인들과 아카드인들한테 빚지고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 60진법, 1년 365일, 한 달 30일, 하루 24시간, 1시간 60분, 1분 60초, 원 360도... 또 그들이 신봉한 놀라운 점성술(아브라함의 종족인 칼데인들)은 아직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효율적인 행정체계며 왕위 즉위식 같은 제도, 도시의 자치 관리, 아직 종교의 상징으로 쓰는 십자가며 초승달... 그리스어나 터키어, 아랍어를 통해 아직 우리한테 쓰이는 그들의 몇몇 단어들, 알콜, 사프란(염료), 깁스(석고), 나프타(원유), 미르라(몰약)... 특히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어쩌면 이런 것들은 우리가 그들한테 빚지고 있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이들은 기원전 7천 년 전 곡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부락을 이루어 공동거주를 하였다. 그 다음 도자기와 벽돌을 만들고 청동제련술을 발견해내었다. 기원전 5500년대가 되면 '관개시설'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신석기 시대의 혁명). 이런 혁신적인 농업기술은 금방 남쪽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퍼져나간다. 이 지역에서 바퀴와 돛, 쟁기를 만들어낸다. 이어 신전과 통치자의 저택을 중심으로 도시가 생겨난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기원전 3300년 무렵 수메르인들이 만들어낸 설형문자이다. 사물을 그림 형태로 적고 동그라미로 숫자를 표시(pictogramme)하다가 차차 단순화, 추상화시키면서 생각(idéogramme)과 말(phonétisme)이 함께 표현되는 쪽으로 진화한다. 수메르어는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이고, 반면 아카드어, 바빌로니아어, 앗시리아어는 인도-유럽어족과 같은 셈어에 속한다. 수메르와 아카드의 문자는 사물을 직접 묘사한다는 측면에서 구체적이고, 이것을 일반화하면서 추상성을 동시에 띤다. 갈대끝을 수평으로 날카롭게 잘라 만든 도구로 점토판에 찍고 그어 기록하는 문자다. 이들은 설형문자로 3천 년 넘게 자신들의 생각과 지식을 경험이나 역사에 바탕을 두고 사실적이고 일관성 있게 전달하였다. 이 지역에 풍부한 재료인 찰흙을 구우면 영원히 살아남는다. 이리하여 양피지나 파피루스와 달리 오늘날 엄청난 양(50만 점)의 점토판 자료가 남게 되었다. 먼저 이 문자는 상거래의 증서나 행정문서, 나아가 외교문서나 역사기록(전승비)에 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 개념을 조직화하여 일관성있게 바꾸고 구체적이며 체계적인 법전을 만들어낸다. 나아가 과학적, 철학적 지식(의학, 수학, 천문학, 점성술)이나 문학작품(창조 신화, 서사시)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어떤 고대문명도 메소포타미아 문명 만큼 모든 분야에 걸쳐 이렇게 풍부한 자료를 남긴 사례가 없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주변지역, 예를 들어 근동지방, 이란, 터키, 나아가 더 멀리 그리스와 이집트며 인더스강 유역까지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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