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쏘, 쏘공원, 부르라렌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 : 1914-1997), [너무 시끄러운 고독](문학동네)

파샤 (pacha) 2020. 10. 19. 02:32

20세기 현대작가인 보후밀 흐라발의 작품(1976)을 읽게 되었다.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지만 분량은 긴 단편이라고 해야겠다. 문장이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자서전. 음유시인처럼 일인칭 화자의 목소리가 깊게 울려퍼진다. 마치 산문시처럼 서술되는 그의 문장은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를 압축하고 있다."를 아나포르로 반복하는 산문시 같다. 폐지 재활용하는 노동자 한탸(Hanta)가 폐기처분되는 위대한 책을 건져내어 교양을 쌓았다는데... 공산 치하의 체코 지식인들이 노동자로 전락한 시절의 음울한 시대 분위기가 은유로 깔리면서 기계 문명의 발달로 소외되는 폐지 압축공의 눈으로 본 우울한 지식인의 자화상... 서양의 위인들이 끊임없이 인용된다. 예수와 노자의 대비가 흥미롭다. 철학자, 작가, 예술가...

 

책을 분쇄하는 일은 책을 다시 살리는 길이다. 폐지를 압축하여 새로운 종이로 재생하듯 '나'는 폐지 더미에서 걸작품을 다시 건져 올려 재생시킨다. 지하실이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바깥 세상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모든 종류의 종이를 통해 세상을 재조명한다. 폐지는 압축기를 통과해 죽음에 이르지만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