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 만한 프랑스 지방

생말로 - 해적의 본거지

파샤 (pacha) 2014. 5. 21. 05:48

성채도시 해적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관문. 해적이란 왕의 허가증을 받아 적의 배를 나포할 수 있는 일종의 민간 해군을 말한다. 왼쪽이 생말로의 문장이고 오른쪽이 부르타뉴의 문장. 문장을 알면 유럽의 역사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성채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나오는 샤토브리앙 광장. 생말로 출신의 유명 인사로 16세기 초반에 세 차례 카나다 탐험을 하고 [카나다 여행기]를 남긴 생말로 출신의 상인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도 있다. 오른쪽으로 거무수레한 성벽이 보인다.


해물모듬요리. 해물먹을 때는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인내심과 노력 또한 요구된다.

생말로에 가면 샤토브리앙 안심 스테이크를 먹어 볼 일. 샤토브리앙이 1821년 영국 대사로 일할 때 그의 요리사가 만들어낸 그의 이름이 붙은 스테이크다. 파리에 샤토브리앙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다.


성벽 아래를 따라 설치된 나무 방책. 파도의 충격을 줄이려고, 떠오는 바닷말을 건지려고(?) 설마 해적들을 막기위한 방책은 아니겠지. 보초들이 해적들을 감시했을 성벽 위에 관광객들이 누비고 다닌다.


썰물 때 다시 육지와 연결된 그랑베(Grand-Bé), 언덕길 너머에 망망대해 대서양을 바라보며 자리잡은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 1768-1848)의 무덤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무덤 저편으로의 기억](1848-1850), [르네](1802), [아탈라](1801),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1811)... 루브르의 신고전주의 전시실에는 지로데(Girodet)가 그린 [아탈라의 매장](1808)을 볼 수 있다. 

[나폴레옹 대관식] 맞은 편에 걸린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의 주인공 레카미에 부인은 몇 십 년간 사귄 샤토브리앙의 내밀한 여자친구. 샤토브리앙은 1838년 부터 죽을 때까지 산 파리의 120 rue du Bac의 집에 살 때 날마다 그의 집과 가까운 그녀의 집을 자주 방문한다. 레카미에 부인은 단테한테 베아트리체 같은 존재다.


아니나 다를까. 뒷조사를 해보니 몰락한 귀족의 후예로서 과묵한 샤토브리앙 아버지(René de Chateaubriand)는 전시에는 해적, 평시에는 노예상인 또는 대구잡이 어부다. 노예무역을 통해 몰락한 귀족의 후예가 콩부르성과 함께 백작 작위도 사들인다. 반면 미신적인 그의 어머니(Apolline de Bedée)는 약골이나 쾌활하고 교양이 풍부한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 대혁명 때 체포되어 생말로에서 파리로 이송되어 일 년 정도 옥살이를 한다. 콩부르성의 집안 분위기는 침울하다. 유일한 오락거리는 다섯 살, 네 살 터울의 누나들, 쥘리(Julie, Mme de Farcy)와 뤼실(Lucile)과 노는 것. 막내 프랑수아는 그야말로 여자들의 치맛폭에 싸여 자라서 인지 성인이 돼어서도 여자들에 둘러싸여 지낸다.


[아탈라 Atala]는 1801년에 발표한 소설로 무대가 북아메리카 대륙이다. 샤토브리앙은 [아탈라]의 출판으로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다. 오늘날로 치면 팝스타 대열에 오른다. 1791년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기를 피해 일 년 동안 북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유배와 고독의 감정이 배어 있다. 뒤이어 나타나는 낭만주의 작가들한테 큰 영향을 끼친다. 이국적 정서, "감정의 물결", 자연의 묘사, 특히 자아의 감정 분석 등이 길지만 리드미컬한 시적인 산문을 통해 낭만주의의 기폭제가 된다.


지로데(Girodet de Roussy-Trioson : 1767-1824), [아탈라의 매장], 1808. 아탈라를 사랑한 인디언 칵타스와 선교사 오브리 신부가 아탈라를 매장한다. 기독교적 주제, 이국적 배경, 참된 감정 이 모든 게 엄격한 다비드의 고전주의 언저리에서 성스러움과 자연 그리고 감정에 애착을 가진 이들을 사로잡았다. 스승 다비드의 혁명적이며 군사적인 영웅주의에서 벗어나 우수에 찬 개인의 슬픔을 묘사하면서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연다. 

동굴 오른쪽 벽면에 성서의 [욥서]에 나오는 문구 : "난 한 송이 꽃처럼 시들었고, 들판의 풀처럼 말라갔다."

이 작품은 [토론]지의 사장 베르탱(Louis-François Bertin) 씨가 주문하여 사들인다. [토론]은 나폴레옹 시절과 왕정복고 시절에 가장 영향력 있던 신문 가운데 하나다.



지로데는 로마의 폐허를 배경으로 산발머리의 우수에 찬 샤토브리앙의 초상도 남긴다. 역시 베르탱이 주문한 이 초상은 1808년 작으로 생말로의 역사박물관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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