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누끼아에서 찬 우동을 먹고 나와 팔레루아얄 안뜰 다니엘 뷔렌 기둥으로 간다. 해가 날 때는 따사롭지만 해가 들어가면 선득하다. 안쪽 가장자리 줄 거루터기 기둥에 걸터 앉는다.
오늘은 산책나온 시민이나 구경온 관광객이 여느 때보다 많지 않다. 바로 내 코앞에 아가씨 한 무리가 보인다. 한데 모두 분홍색 슬리퍼를 신고 있다. 여섯 명이다. 일곱 번째 여자는 등에 배낭을 지고 사진기를 들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머리에 번쩍이는 보석을 총총 박은 왕관을 쓰고 있다.
결혼식 전 처녀졸업 행사인가. 바람이 조금 일어 보자기를 땅바닥에 조심스레 펼친다. 그리고는 머리를 가운데로 모아 다리를 모으고 드러눕는다. 사진사가 위에서 이 장면을 찍는다. 그 담엔 가운데로 자리를 옮긴다. 윗옷을 벗어두고 한 줄로 나란히 내쪽을 향해 늘어선다. 위는 거의 속옷차림이다. 하나 같이 분홍테의 선글라스를 걸친다. 뭐하려는 걸까. 한 팔은 들고 한 팔은 내려 옆사람의 손을 잡아 브이자 형태를 만든다. 그 다음엔 일렬종대로 방향을 바꿔 선다. 머리를 풀어 헤친 뒤 고개를 숙인 자세에서 머리를 치켜 들어올려 머리칼을 휘날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소품으로 가져나온 역시 분홍색 챙넓은 모자쪽에 모여 사진을 찍고 소지품을 챙겨 사라진다.
너댓쯤 됐을까 꼬마 여자애가 내가 앉은 기둥 오른쪽으로 가까운 기둥에 혼자 올라가 있다. 내쪽을 보는데 손에 봉투 하나를 들고 있다. 그 뒤에서 엄마가 살금살금 다가온다. 아이를 놀래키고는 애 볼에 쪽쪽 뽀뽀를 한다. 맞은편에서 아이 아빠가 걸어온다. 여태 아이가 본 것은 제 아빠다. 언제 나타났는 지 대여섯 여자들이 한꺼번에 내 앞쪽에 자리잡는다. 나이 지긋한 아이 할머니는 시장용 비닐 가방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내 오른쪽 앞 기둥에 걸터 앉는다. 애 엄마는 바로 앞쪽 기둥에 올라가 선다. 봉투 쥔 여자는 그 두 여인의 가운데쯤 서고 나머지 사람들은 내 맞은 편에 약간 거리를 두고 죽 둘러 선다.
봉투쥔 여자가 문제를 낸다. 총 열 문젠데 "누가 백 만 유로를 벌고 싶어요?"와 같은 방식이라고 먼저 규칙을 말한다. 조커가 모두 셋이라고.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있고, 관중한테 자문을 구할 수도 있고, 넷 중 두 개만 남겨 하나를 고르는 오십 퍼센트로 맞출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 관문을 통과하면 점심 먹을 자격이 주어져요 하고 덧붙인다.
문제는 모두 파리의 파사쥬에 얽힌 내용이다. 쉬운 문제는 절대 아니다. 아홉 개까지 그런대로 잘 나간다. 마지막 문제에 막히자 오십 퍼센트 조커를 쓴다. 어느파사쥬에 맨 먼저 생긴 찻집이름을 알아맞히는 건데 잘못 찍어 틀린다. "차나무 찻집"을 찍는다. 답은 "계피나무 찻집"이다. 관중들이 아쉬워 한숨섞인 소리를 길게 낸다.
아마 아니마트리스(사회자) 실습인 모양. 끝나고서 엄마가 아이한테 늘어선 관중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는 양을 보니 그런 것 같다.
애 아빠는 문제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열 문제가 끝나자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는 점심먹으러 떠난다. 지름길로 가려다 출구를 못 찾아서 그런지 되돌아나와 둘러간다.
그들이 떠난 뒤 나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팔레루아얄 안뜰쪽 쪽문으로 가로질로 팔레루아얄 광장쪽으로 나오는데 돌아온 그 무리가 내 앞에서 포부르생토노레길 식당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공사가 끝나 회랑이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다. 14.02.15
그냥 보내기 아까운 정말 날씨 좋은 날. 21도까지 올라간 청명한 날. 10.04.15
가운데에 사람들 몇이 모여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곳은 지하수가 흐르는 곳이 보이는 데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동전을 집어던진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다시 동전을 건져 올리는 사람도 있다. 난간 왼쪽에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 보는 사람이 동전 건져 올리는 사람이다. 여러 나라의 동전들을 볼 수 있는데 유로 동전만 건진다. 과연 어떻게 물흐르는 바닥에 붙은 동전을 건져 올릴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보기 바란다.
다니엘 뷔렌의 기둥 뒷쪽 회랑에 설치된 폴 뷔리(Pol Bury)의 분수(1985).
08.05.2015 너무 햇빛이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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