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밤

리도에 가고 싶다

파샤 (pacha) 2012. 3. 11. 09:25

파리는 낮이나 밤이나 볼거리가 넘쳐나는 도시로 밤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세계 정상급의 고품격 쇼이다. 샹젤리제 대로 가운데 위치한 리도(Lido), 몽마르트 언덕 기슭의 무랑루즈(Moulin Rouge), George V 길 들머리에 있는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이외에도 폴리 베르제르(Folies Bergères), 파라디 라탱(Paradis latin) 등이 있다. 쇼하면 으레 야한 쇼를 떠올림직한데 절대 그런 류가 아니라 예술성이 가미된 수준 높은 대중예술이다.


리도는 행복(bonheur)을 찾아가는 현대여성의 이야기를 다양한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1부 쇼 : 21시00-22시45 ; 2부 쇼 : 23시00-1시15. 입장료에 음료값이 포함. 19시00부터 1부 쇼 시작 전까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데, 시간이 빠듯해서 좋은 서빙이 절대 아님. 

리도에 갈 때는 파티복이나 정장은 아니더라도 복장에 신경을 쓰는 게 좋다. 쇼가 시작되기 전 무대에 나가 생음악 반주에 맞춰 춤출 수도 있다.

 

- 리도쇼는?

- 한 마디로 줄여 말하긴 힘들고. 오트쿠튀르 쇼 같은 화려한 무대의상이 우선 눈을 사로잡아. 각 나라의 민속 복장과 춤이 선 보이는데, 우리의 부채춤을 연상케하는 장면도 있어. 인도풍 춤도 꽤 인상적이다. 팔이 넷인 비시뉴 신을 등짐지고 추는 춤 말야. 이 장식물 무게가 자그마치 20킬로래. 배꼽을 드러내고 요염하게 허리를 돌려대며 천일야화의 세계로 인도하는 아랍춤도 볼 만하지. 솔로몬 왕을 만나러 오는 사바의 여왕이 코끼리를 타고 나타나는데, 물론 코끼리는 로봇이야.

천상의 미녀를 두고 결투하는 장면에서 윤기 자르르한 밤색말이 진짜 등장해. 말탄 기사는 정의의 사도였나, 지옥의 사자였나? 아니면 심판? 이 장면에서 뗏놈 복장의 배불뚝이 저승사자 둘이 맨 앞에서 창을 휘두르며 망나니 춤을 추고 이를 둘러선 여인들은 열띤 응원을 하지.

 

- 그럼 춤만 보여주는 거야.

- 아니, 춤만 있겠어? 춤과 연기로 구성되는 장면 사이에 묘기 프로가 들어가지. 러브스토리 곡에 맞춰, 천정에 드리워진 하얀 천을 부여 쥐고 오르락내리락 그네타는 사랑에 목마른 남자의 연기도 그럴 듯해. 뗄레야 뗄 수 없는 원숭이와 원숭이 주인이 벌이는 마술은 신기에 가깝고. 

- 곡예와 마술 또? 

- 뭐니뭐니해도 물과 빛이 빚어내는 신묘한 조명술로써 장면 전환을 물흐르듯 해내는 게 어느 쇼도 흉내낼 수 없는 리도만의 노하우야. 장면이 바뀔 때 끊어지지 않고 서로 겹쳐지면서 스르르르 넘어간다구. 무슨 소리인지 쇼를 봐야지 알아. 남자 솔로로 모래시계를 죽어라 어루만지며 물구나무 서기하는 기계체조 묘기와 개그꾼이 관객 둘을 무대로 끌어올려 흉내내기를 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촌극도 있다.

 

- 또 뭐가 있는데?

- 클라이막스에 나오는 묘기는 아이스 링크에서 펼치는 피겨 스케이팅이야. 정사각형의 무대가 한 순간 빙판으로 변하는 광경도 흥미롭고, 여자의 머리가 얼음판에 다을듯 말듯 빙빙 돌리는데 야릇한 현기증이 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연기하는 이 묘기에서 가장 박수를 많이 받지.

 

- 애그, 그게 다야?

- 이게 다는 아닌데, 하드디스크 용량이 적어서... '행복'을 찾아가는 여인이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장면도 있지. 그러니까 리도에는 오토바이도 나오고 비행기도 등장한다. 참, 빼놓을 뻔했네. 분수가 뿜어나오는 연못 위에 연꽃잎이 스르르르 벌고 그 한가운데 선녀가 나타나는 인도춤 장면도 압권이야. 또 있어. 면마다 여신들이 앉은 3층 구조의 피라미드가 지하에서 솟았다가 빙빙 돌면서 다시 땅으로 꺼지는 장면은 신비롭기 그지 없어. 고대 이집트에서는 입문식을 통과한 사제한테 이시스 여신 같은 미인이 보상으로 주어졌다쟎아. 무덤 뚜껑을 열고 천상의 여인이 훤히 비치는 옷을 두르고 오묘한 자태를 잠깐 선보였다 아쉽게도 금방 사라져.

 

- 안무가 현대적이라는데, 노래는 어땠어?

- 춤은 템포가 빠르고 리듬은 현대적이야. 록, 발라드, 재즈, 불루스... 샹송, 팝송, 독일 노래까지 나와. 주인공인 도시여성이 '행복' 찾는 노래는 느리고 부드럽다.

 

- 여성 팬을 끌만한 건 없었어?

- 글쎄. 남자 무용수 역할이 좀더 크진 것 같애. 우수어린 배경음악이 흐르고 청춘 남녀가 파도 부서지는 해변에서 만났다가 눈내리는 역에서 헤어지는 클로즈업 장면과 그걸 보는 채플린 복장의 배우가 의자에 앉아 쓸쓸히 무대 뒤로 사라지는 연기도 나온다. 이쯤하면 버라이어티쇼 아냐?

 

- 덧붙일 거 없어?

- 글쎄, 쇼는 더없이 고급스러운데, 박진감이 덜해. 춤과 음악에 연극성이 강화되었더라.

- 니 말만 들어서야 이해가 되겠나. 직접 한번 가봐야지.

- 맞아, 생각하는 끈이 짧고 보는 눈이 어두워서... 암튼, 세 보뇌르 (행복이야).

 


* lido : 연안 사주. 해안의 모래톱. 또 다른 '리도'가 베네치아에 있다.

* 무용수 뽑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키로 여자 무용수는 175센티가 표준이고, 남자 무용수는 적어도 183센티 이상. 현재 안무맡은 여자 무용수는 183센티.

* 여자 무용수의 하루 저녁 수입은 얼마? 2000-2200 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