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푸생의 고전주의

파샤 (pacha) 2012. 4. 29. 21:43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하여도 실제 풍경 보다는 신화적이고 목가적이며 성서적인 배경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쓰인다. 연극공간을 살리기 위한 무대장치로서의 배경이다. 제한된 색조에 정제된 풍경이며 장면 연출 등 바야흐로 고전주의에 와 있다.


니콜라 푸생(1594-1665)이 죽기 일 년 전에 완성한 [사계](1660-1664)는 작가의 예술적인 유언장 같은 작품으로 17세기 회화의 최고봉을 이룬다. 어떤 준비 데생도 알려지지 않고 주제 또한 완전 새롭다. 또 작품의 심오한 의미는 계속 토론 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사계라는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성서에서 따온 네 개의 주제를 통해 풍경화를 그려낸다. 언제나 예수가 종착점이 되는 직선적인 이야기를 기독교적으로 읽으면 고대부터 내려오는 순환적인 세계관과 겹쳐진다. 철학자 화가로 널리 알려진 푸생의 사계는 자연이나 신성, 나아가 신비에 대한 고찰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전통적인 도상학에서 사계는 각 계절을 특징짓는 산물과 신을 통해 의인화 된다. 봄은 꽃과 꽃의 신(혹은 비너스)으로, 여름은 밀과 곡물의 신 케레스로, 가을은 포도송이와 주신 바쿠스로, 겨울은 찬 서리와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불칸 또는 아도니스)로 표현한다. 봄과 여름은 여신으로, 가을과 겨울은 남신으로 재현된다. 사원소 역시 사계절과 결합된다. 공기/봄, 불/여름, 흙/가을, 물/겨울. 또한 사계절은 하루의 시간대와 연결된다. 아침/봄, 점심/여름, 저녁/가을, 밤/겨울. 

그런데 푸생은 세속적인 주제를 신성한 영역으로 전이시킨다. 성서의 일화에서 따온 소재로 대자연의 풍경을 만든다. [사계]에서는 절대자의 모습이 현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곳곳에 드러난다.


[봄]. 

리슐리외 공작을 위해 그린 4부작으로 계절, 하루의 시각, 인생의 시기, 성서의 주제가 동시에 나타난다. 

[창세기]에서 주제를 따온다.

이미 금지된 과일은 먹은 이브가 아담에게 사과를 가리킨다. 봄은 초록빛으로 그려진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동물은 강물 위에 보이는 백조이다. 천국에는 네발 짐승이 없다.


[여름]

모아비트의 가난한 하녀 룻이 부즈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허락받는다. 룻은 예수의 조상인 다윗의 할아버지를 잉태한다. 부즈는 예수의 직계 조상인 셈. 

여름은 익는 밀의 황금빛으로 드러난다.


[가을].

모세의 사신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지방에 풍요의 상징인 과일을 가져온다. 가을은 푸른 라벤다빛으로 드러난다.


성서의 [민수기]에서 주제를 따온다. 모세의 인도로 헤브라이인들은 약속의 땅 들머리에 다다른다. 열두 부족들은 부족당 한 명씩 뽑아 정찰대를 만든다. 정찰대원들은 이 땅이 아주 비옥해서 과일이 굉장히 크게 열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푸생은 [민수기]에 나오는 대로 석류와 함께 거대한 포도송이가 막대기에 매달린 것으로 묘사한다. 그 다음에 두 정찰대원은 사막에 머물러 있던 헤브라이인들과 합류한다. 사막은 왼쪽에 바위투성이의 언덕에 삐죽 솟은 열매를 맺지 않은 앙상한 나무로 표현된다.


막대기에 매달린 포도송이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뜻한다. 약속의 땅은 예수의 비유이다. 신의 아들을 포도송이로 불렀다. 이 포도송이가 으깨어져 천상의 포도주가 된다. 포도주가 바로 예수의 피다. 이 세상을 구원한 댓가이다.


[겨울, 혹은 대홍수], 1660-1664.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기필코 거머리가 되어야 한다. 겨울은 잿빛으로 표현된다.


푸생은 창세기에서 주제를 따온다. 노아의 방주를 빼고는 땅 위의 모든 것을 가라앉히는 순간을 묘사한다. 노아의 방주는 뒷면에서 어렴풋이 떠 있다. 밤 풍경은 잿빛 비에 씻겨 내려간다. 앞쪽에 사람들이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해 가망없는 사투를 벌인다. 왼쪽 바위 위엔 불안한 모습으로 커다란 뱀이 뚜렷이 보인다. 오른쪽 바위에 뿌리박은 가장 작은 나무에 두 번째 뱀이 걸터 앉아 있는데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두 마리의 뱀은 대지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대홍수가 물러간 다음 재생을 알리는 죽음이다. 

방주는 교회를 비유한다. 나무로 만들어져서 큰물을 피한다. 방주의 나무는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의 나무를 예고한다.


대홍수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여는 구세주 예수의 이미지로써 사계를 마감한다. 사계는 푸생이 병마에 시달리던 죽기 일 년 전에 완성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작품을 완성한 일 년 뒤 푸생은 이렇게 토로한다. "난 영원히 붓을 놓았어요. 이제 죽을 일 밖에 없소."


[자화상] 1650. 

자신의 친구 Freart de Chantelou를 위해 그린 자화상으로 그림과 우정을 배경에 그려두고 있다.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1638-1640.

지상낙원을 상징하는 "아르카디아에도 죽음은 있다"는 묘비명을 읽고 있다. 인생이 짧기 때문에 즐겨야 한다는 걸 일깨워준다. 

이 경우 정제된 자연에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비나 여인들의 납치], 1637-1638. 

로마 병정들이 아내로 삼으려고 사비나의 여인들을 낚아챈다. 플루타르크의 [로물루스의 삶]에서 주제를 취함. 

로마인들의 우두머리 로물루스는 붉은 천을 들고 로마 황제의 자태로 연단 위에서 명령을 내린다. 고대풍을 연출하려고 푸생은 고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등장시킨다. 강렬한 색상 대비를 통해 난폭함을 잘 드러낸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각선 구도를 취해 오른쪽과 왼쪽으로 솔리는 움직임이 잘 균형을 이룬다.


[나일강물에서 구출된 모세], 1638. 

헤브라이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예언자 모세는 그의 엄마가 죽음을 모면시키려고 나일강에 버리는데 유태인의 압제자인 파라오의 딸이 구해준다.


[간통죄를 저지른 여인], 1653. 

정원사 앙드레 르 노트르를 위해 그린 그림. 르 노트르는 루이14세한테 선물로 준다.

얼굴 표정뿐 아니라 각 인물들이 취하는 자세 그중에서도 손짓이 흥미롭다.


[엘리제르와 레베카], 1648. 

[창세기]에서 따온 소재로 아브라함의 사신 엘리제르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아가는 내용. 엘리제르는 우물가에서 자기 아버지의 가축떼한테 줄 물을 긷는 레베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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