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가 끝나가는 14세기 말부터 북유럽에서는 신과 좀더 긴밀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생겨난다. 예술가들은 신자들이 종교적인 주제에 좀더 친밀하게 빠져들도록 표현한다. 기도서나 경건한 그림이 풍부하게 제작되어 개인차원의 신앙심을 북돋운다. 보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아주 정확한 세부를 담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플랑드르 사실주의"가 생겨난다. 정밀한 세부 묘사가 이 만큼 세밀하고 정교한 적은 서양회화사에서 전무후무하다. 더욱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입체적인 공간과 거리감을 느끼도록 착시효과를 정교하게 사용한다. 성서의 일화를 플랑드르 부르주아의 실내공간에 배치하고 이 지방의 가구나 생활방식을 통해 사실감을 부여한다. [성모영보]를 그린 작품에서 마리아와 가브리엘 대천사를 좀더 친밀한 자세로 배치하여 풍속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중세 신학에서 자연의 각 구성물은 신의 의지를 반영한 거라고 본다. 이리하여 감각세계는 펼쳐진 책이 된다. 표현된 모든 구성물은 상징적인 의미를 띤다. 회화의 완벽성은 신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방편이다.
15세기 초엽의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는 플레말의 거장(Maître Flémalle)로 알려진 로베르 캉피옹(Robert Campion:1378께-1444), 얀 반 에이크, 로지에 반데르 베이든(Rogier Van der Weyden:1400께-1464) 등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서 브루넬레스키의 선적인 원근법은 단일하고 종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반면 플랑드르 회화는 면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현실세계를 묘사한다. 밝은 부분이 작품에 통일감을 가져오며 하찮은 세부까지 돋보이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현실세계의 풍요를 극도로 정확하게 그려낸다. 플랑드르의 현실세계는 상징성을 띤 공간이 된다. 성서의 장면이 일상생활의 공간 속에 펼쳐진다. 사소한 장식품, 간단한 생활도구나 풍경의 세부도 신의 존재를 찬양하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꺼진 촛불은 구세주의 빛을 기다리는 의미를 지니고, 석류는 예수의 수난이나 잉태를 나타내며, 백합꽃이나 유리 물병은 마리아의 처녀성을 가리킨다. 포도 덩굴은 예수를 나타낸다.
현실에 드러나는 빛의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서 얻는 확실하고 즉각적인 시각 탐구가 플랑드르 회화의 독창성이다. 빛은 아주 크거나 작은 것,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밝혀주는 유동하는 매체이다. 빛을 매개로 인물과 풍경이 통합되고 공간의 구성물들을 서로 구분지으면서도 공간을 통일시킨다. 플랑드르 회화에서 환하게 광택이 나 보이는 것은 여러 겹으로 투명하게 칠하고 표면을 다양하게 만들며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화 기법을 통해 가능해진다. 빛의 원천을 다양하게 써서 그림자와 반사광을 여러 개 만들어낸다. 단색조의 그림에서 인물은 양감과 물질적 일관성이 확보되는데 이런 일관성은 빛과 그림자 또는 내부 조명과 자연광 사이에 계산된 관계에서 생긴다.
로지에 반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브라크 가족의 3매화], 1451-1452.
뒷면에 Jehan Braque와 그의 부인 Catherine de Brabant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플랑드르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배경처리 기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스 메믈링 (1435께-1494), [노파의 초상] 배경 처리를 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영향을 많이 준 것을 알 수 있다. 두 손 모은 정면 초상은 이미 [모나리자]를 예고한다.
한스 메믈링(Hans Memling:1435께-1494), [이집트로 탈출할 동안의 휴식], 1475-1480.
왼쪽, 세례자 요한, 오른쪽, 막달라 마리아.
뒤러(Albert Durer:1471-1528), [엉겅퀴를 쥔 자화상], 1493. 스물두 살 때의 자화상.
사분의 삼 각도를 취해 검은 배경에 깊이감을 더해준다. 손에 쥔 엉겅퀴는 변함없는 부부사이의 정조를 나타냄과 동시에 예수의 가시 면류관을 떠올리게 한다. 엉겅퀴를 통해 결혼생활의 충실성과 함께 예술가로서의 신념을 드러낸다. 아주 세련된 복장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젊은이임을 보여준다. 약간 사팔뜨기로 표현된 강렬한 시선은 상상의 관람자를 겨냥하고 있다. 웨이브진 긴 금발과 섬세한 용모는 많은 예술가의 자화상의 모델이 된다. 화면 윗부분에 "1493 내게 모든 일은 저위에 씌어진 대로 흘러간다"라고 써두었다. 결혼생활이나 예술활동에서 신의 섭리에 자신을 내맡기는 신념을 드러낸다.
13세부터 40세에 이르기까지 뒤러는 세 점의 유화와 세 점의 데생 자화상을 남긴다. 나이별로 각인된 용모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하면서 뒤러는 자화상을 통해 그야말로 서양회화사에서 처음으로 예술가의 내밀 일기를 만든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 1497/1498-1543), [에라스무스의 초상], 1523.
르네상스기의 유명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측면 초상으로 고대 군주의 측면 메달을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엄격한 특징을 띠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을 잘 드러낸다. 1523년 출판된 마가 복음서에 주석을 다는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지식인의 면모를 돋보이도록 한다. 주의 깊고 집중한 표정이다. 손은 마치 생각이 자연스레 연장된 듯 느껴진다.
루카스 크라나흐 (Lucas Cranach), [미의 삼여신], 1531.
크라나흐의 경우 모델을 직접보고 그린 게 아니라 하나의 유형을 만들어낸다. 나체화 같지만 잘 보면 투명한 옷을 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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