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의 명소들

베르사유 2

파샤 (pacha) 2012. 5. 26. 03:06

베르사유 성에서 가장 화려한 거울의 방, 이 방의 용도는 과연 뭐였나요? 창문이 열 일곱 개, 거울 역시 열 일곱, 이건 루이14세의 통치 초기 17년(1661-1678)과 일치한다. 천장화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린 이는 베르사유 성의 모든 설계를 총괄한 왕실 수석화가 샤를 르브랭. 르브랭은 자물통까지 설계할 정도였다. 당시 이렇게 큰 거울은 거의 보석에 맞먹는 가격이었다. 21개가 박힌 거울은 갯수는 전부 357개이다.


왕비의 침대. 마지막 주인공 마리앙투아네트 시절을 재현한 것. 이 방에서 프랑스의 왕자 공주 19명이 태어난다. 프랑스 왕가의 출산 전통은 공개출산이었다.

베르사유 성의 벽지는 뗏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것. 벽지와 가구는 여름용과 겨울용으로 나뉘어졌다. 겨울에는 벨벳, 여름은 비단으로.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동물임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빛바랜 침대보에서 세월의 퇴적물이 만져질 듯하다. 침대에서 다른 부분은 다 복원한 것이지만 침대 보는 오리지날이다. 등받이 달린 의자 둘은 루이16세의 것이다. 소파는 베르사유성에 있던 프로방스(Provence) 백작부인의 것이고, 여덟 개의 접이 의자 가운데 네 개는 아르투아(Artois) 백작부인의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흉상, 보석상자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군이 몰려오자 남편 방쪽으로 줄행랑을 친 쪽문. 왼쪽에 자리잡은 보석상자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다시 돌아온 오리지날이다. 황동 띠로 장식된 벽난로와 불막이도 되돌아온 오리지날.


만찬실의 식탁과 의자. 등받이, 팔걸이가 있는 의자는 딱 두 개. 나머지는 앉은뱅이 의자다. 열 두 명 이런 의자를 얻어 걸친 이는 대단히 지체 높은 공작이나 백작 부인에 속한다. 나머지 초청인사들은 다 서서 구경하였다.


식당방에 걸린 마리 앙투아네트와 세 자녀. 안겨 있는 애가 루이17세. 오른쪽의 큰 아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병으로 죽는다. 그는 유모차를 가리키고 있는데 막내 여동생이 얼마 전에 죽었대요 하는 몸짓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를 거치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이 집 사람은 맏딸인 마담 루아얄(Mme Royal).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마리 앙투아네트 전속 여류화가 마담 비제르브랭(Mme Vigée-leBrun).


왕궁의 동쪽에 자리잡은 왕실 마굿간. 집주인은 말타고서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한데 이 두 건물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보면 정말 놀랍다. 17세기에 뚫은 왕궁 앞길은 대단히 넓다. 몇 미터쯤 돼보이나? 백미터는 넘어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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