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혼잡한 파리를 떠나 시골의 청량한 공기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파리의 근교로 가보자. 북쪽에 오베르쉬르우아즈, 발루아 지방, 남쪽의 바르비종을 비롯한 옛마을들로 가는 여행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다.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이다. 19세기로 되돌아가는 과거로의 회귀다. 더욱이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은 곳이면 더욱 좋겠다.
파리 남쪽으로 육십 킬로쯤 떨어진 바르비종으로 가보자. 관광명소여서 관광지 냄새가 물씬 풍길 것 같지만 짐짓 태를 부려 꾸며두고 관광객을 부르는 그런 곳은 아니다. 주민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옛 마을의 향취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바르비종 중앙통을 따라가면 마주치는 집들.
밀레의 아틀리에 입구. 대단한 볼거리가 없지만 입장료는 제법 세다. 한 번쯤 들어가는 건 아깝지 않겠다. 밀레 덕에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주민보다 훨씬 많다. 숲이 가까이 있어 풍치가 좋고 공기가 맑아서인지 이 동네 집값은 만만치 않다. 인구 1500명 정도의 마을인데 고급주택을 판다는 부동산 사무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맘에 드는 집을 한번 골라보는 재미도 솔솔찮다.
바깥쪽에서 본 밀레의 아틀리에. 문화재 건물로 지정되어 밀레 박물관으로 쓰인다. 밀레는 시력이 극히 나빠서 다른 바르비종파의 풍경화가들과 달리 주로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였다. 인물의 묘사는 모델보다 마네킹을 많이 사용한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인물은 노동이나 동작에 초점이 주어져 있을 뿐 인물 그 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
나르시스 디아즈 드라 페냐(1807-1876) : 풍경을 배경삼아 현실에 가까운 알레고리적이고 신화적인 인물을 등장시키는 "우아한 색채화가". 밀레와 루소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바르비종에 머물면서 퐁텐블로 숲을 많이 그린다. 노르망디 지방에서 많이 체류했으며 특히 에트르타에서는 쿠르베와 동행하여 바다 풍경을 몇 점 남긴다. 반고흐는 색채화가로서 페냐를 아주 높이 평가한다.
저 아담한 나무문을 밀치고 들어가고 싶지 않는가.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꼽히는 도비니(1817-1879)가 머물렀던 집. 오베르쉬르우아즈에 가면 도비니의 집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도비니의 친구 화가들이 참여한 벽장식과 아담한 정원도 볼 만하다. 오베르를 거쳐간 화가는 반고흐뿐이 아니라 인상주의파 화가들이 여럿 있다. 피사로, 르누아르, 세잔... 오베르의 교회 아래쪽에 도비니의 기념물도 볼 수 있다.
솔직히 바르비종보다는 오베르가 훨씬 아름다운 마을이다. 반고흐의 집을 지나 관광안내소를 거쳐 오르막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가면 도비니의 집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도비니의 집 팻말을 보며 왼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죽 따라가면 오베르의 성이 나온다. 이 길이 무척 아름다운 것은 죽 늘어선 멋진 주택들 덕택이다. 집마다 특별한 이름이 붙여져 있고 꽃피는 철이면 집집마다 정원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 향기가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고 발길을 잡아끈다. 얼마를 가다보면 압생트 박물관 표지판이 나온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늘 지나치기만 했다. 삼거리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마을 뒷편의 간선도로로 오베르의 교회로 이르는 길이다. 마을 앞으로 우아즈강이 흐르고 마을 뒷편으로 언덕이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으며, 언덕배기를 오르면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나오고 공동묘지도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공동묘지로 오르는 길은 골고다 언덕을 떠올리기도 하고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높은 언덕배기 위의 공동묘지의 망자들은 천국과 한 걸음 가까이 가 있는 셈이다. 오베르의 언덕배기를 오를 때는 레드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을 들으면 제격일 듯...
[보물섬](1883)의 작가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이 1878년에 머문 바브레오 호텔. 여행작가로 유명한 스티븐슨은 바르비종에서 10살 연상이며, 남편과 별거 중인 게다가 자식이 둘 딸린 미국의 여류 화가 파니 오스본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결혼에 이르지는 못한다.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경우](1886)라는 단편 소설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며 [나귀와 같이한 세벤 여행](1879)은 프랑스의 중남부 마시프 상트랄의 도보여행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븐슨은 1878년 9월 22일 르모나스티에(Le Monastier)를 떠나 1878년 10월 3일에 생쟝뒤가르(Saint-Jean-du-Gard)에 도착한다. 모데스틴(Modestine)과 같이 한 여행에서 스티븐슨은 자신의 여행 취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어디를 가려고 떠나는 게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 여행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여행한다. 여행의 본질은 이동한다는 것과 삶의 필연과 우연을 좀 더 느끼는 데 있다." 미국으로 떠나버린 연상의 파니를 잊으려고 지쳐빠질 때까지 걸었을지 모른다. 루소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산책을 하였다. 네르발은 산책을 하며 산란한 정신의 갈피를 잡았다.
이 호텔의 부제가 스티븐슨의 집이다. 에딘버러 출신인 스티븐슨은 사모아섬에서 숨을 거둔다. 나그네여 그대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마을 성당 왼쪽 건물이 테오도르 루소 박물관이다. 루소는 바르비종파의 풍경화가로 밀레와 친분이 두터웠다. 이 소박한 시골 성당에 들어가면 골동품 같은 풍금이 놓여져 있다. 십자가 꼭대기에 홰를 튼 저 장닭에서 세월의 깊이가 묻어난다. 아무리 못해도 저 수탉은 나이가 백 년은 더 들어보인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런 아담한 성당에 들어서면 신과 신자의 눈높이가 저절로 맞춰질 것 같다.
바르비종의 시청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퐁텐블로 숲으로 약 200미터쯤 걸어가다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서 얼마간 언덕배기를 올라가면 큰 바위들이 무더기로 나타난다. 거기 어디메쯤 밀레와 루소를 함께 새긴 청동 기념물을 발견할 수 있다.
성당 안에 있는 풍금. 2013.5.28에 다시 갔을 때 찍음.
예술가들의 숙박지이면서 토론장 역할을 한 간(Ganne) 여인숙. 화가들보다 문학가들이 많이 들렀다. 이런 데를 빌어 하루 저녁 수준 높은 모임을 가져보면 좋겠다. 노르망디의 스리지라살만 못해도 이 동네가 주는 정취로 인해 멋진 숙소가 되리라.
사진에 나타난 화려한 봄날처럼 빛 좋은 날 바르비종에 가야한다.
'파리 근교의 명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찾은 퐁텐블로성 5월 30일 (0) | 2012.06.09 |
---|---|
바르비종의 중앙통 (0) | 2012.06.05 |
베르사유 2 (0) | 2012.05.26 |
퐁텐블로 2 (0) | 2012.04.08 |
쏘 공원 (0) | 2012.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