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이 단 열흘 만에 이슬람 근본주의자 탈리반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미국이 20년간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아붓고도 1975년 사이공에서 철수한 것처럼 카불에서도 불품없게 철수하였다. 어디 미국만인가? 미국에 동조한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급작스런 변화에 뉴스 거리가 쏟아져 나와 전혀 관심 밖이던 아프간 뉴스를 샅샅이 읽는다. 아프간 대통령은 탈리반이 카불에 입성하기 전 국민들을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그 정부에 협력한 사람들이 탈리반의 보복이 두려워 죽기살기로 아프간을 떠나려는 몸부림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 이륙하려는 미군용 수송기에 메달린 수많은 사람들의 이미지가 자꾸 되살아난다. 17일 탈리반 대변인은 기자 회견에서 믿기 힘들지만 국제사회에 정당성을 확보하고 민심을 얻으려고 유화책을 발표했다. 공무원들을 용서하고 여자들한테 부르카를 강요하지 않으며 여자들이 일도 할 수 있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 두고 볼 일이다. 1996년에서 2001년 사이의 탈리반 정부는 손을 자르고 돌로 쳐죽이고 칼로 목을 치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없이 저질렀는데... 그 때 여자들은 부르카를 의무적으로 입고, 외출할 때는 인척 남자와 동행해야 하고 일도 할 수 없고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미국의 퇴각에 중국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이란, 터키, 파키스탄도 이미 탈리반한테 손을 내밀고 있다.
옛부터 아프간은 양귀비 재배로 유명했다. 옛날 귀한 보석으로 여긴 청금석(lapis-lazuli) 주산지의 나라다. 양귀비를 원료로 정제한 헤로인 마약의 90퍼센트를 공급한다고 한다. 코로사바드의 부조에 이미 양귀비를 쥔 인물상이 나온다. 물론 그 전에 에비힐 누반다에서 동공을 청금석으로 박아넣었다.
사르곤2세 왕궁의 넓이를 알아보려고 관련된 글을 읽기 시작했다. 270*350 : 94500 제곱미터로 약 10헥타르의 거대한 왕궁이다. 베르사유성이 81500제곱미터인데 이보다는 훨씬 크다. Paul-Emile Botta가 1843-1844년 동안 최초로 발굴한 곳으로 메소포타미아 유적의 발굴의 시초다. 그 뒤 2차 발굴에 나선 플라스(Victor Place)가 유물들을 가져오다 티크리스강에 빠뜨리는 일이 일어났다. 영국은 앗시리아의 수도 니니베를 발굴하여 특히 아수르바니팔왕의 도서관을 통째로 가져간다. 발굴된 전체 약 50만 개 가운데 약 13만 개의 점토판을 영국이 가지고 있다. 20세기 들어와 미국 시카고 대학의 동양학 연구소에서 1929-1935에 다시 이곳을 발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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