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찾는 카페

테라스가 멋진 느무르(Nemours) 카페

파샤 (pacha) 2012. 7. 22. 04:51

코메디 프랑세즈 앞 콜레트 광장을 마주보는 카페로 이 앞을 따라 들어가면 팔레루아얄 안뜰이 나온다. 먼저 다니엘 뷔렌이 설치한 흑백의 기둥들을 만난다. 더 들어가면 조용하기 그지없는 안뜰. 오늘은(7월 21일) 콜레트 광장에서 자기네 음악 페스티발 광고의 일환으로 현악기 주자들이 야외연주를 선보였다.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셨다. 이쪽 어디메쯤 네르발이 바다가재를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닌 일화가 전해지는데 사실 여부는 좀 의심스럽다. 광기의 깃털을 달고 파리 시내를 해매다니다가 빈털털이 네르발이 이쪽의 어느 카페에서 적당하게 허기를 달래는 장면에서 이 카페에 여유만만하게 앉아 식사하는 [토론]지 사장 베르탱씨를 발견한다. 자신이 극도로 불행한 순간에 타인의 행복한 순간을 엿볼 때 느끼는 감정은 과연 어떨까.


루브르에 가면 초상화가로 유명한 앵그르가 그린 [베르탱씨의 초상]을 신고전주의 회화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신문값을 대폭 낮추면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여 갑부가 된 부르주아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손가락을 팔걸이에 곶추 세우고 금새라도 열띤 토론을 벌일 듯한 표정이 신문사 사장 다워 보인다.


도리아식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선 처마 아래 테라스는 정말 근사해 보이지 않나. 여름에는 파라솔, 겨울에는 난로가 등장한다. 어쨌든 이 카페는 실내보다는 테라스가 차지하는 공간이 더 넓다고 보면, 그야말로 테라스 카페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왼쪽에 아르누보 스타일의 알록달록한 장식을 한 팔레루아얄 메트로 입구 가운데 하나. 오른쪽 공사중인 건물이 코메디 프랑세즈.


2.80유로 짜리 커피는 그런 대로 괜찮았다. 다른 카페보다 훨씬 낫다는 말씀. 절대 실망하지 않을 터. 물론 직원도 상당히 천절했다. 일본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생음악이 눈앞에서 흘러나오는 이날 이 카페로 들어가길 정말 잘했다.


다시 나타난 현악주자들. 음악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먹고 살기 힘들어 거리 공연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서 피아노 독주하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팔레 루아얄 광장에는 관악밴드도 등장하는데 오늘은 라파에트 백화점 앞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13. 5. 11).


다시 만난 현약주자들. 13.5.26. [다양성 페스티발]을 둘러보고 에이스마트로 장보러 가는 길에. 가운데 가로등 뒷쪽으로 페스티발 텐트들이 보인다.


다니엘 뷔렌의 [기둥], 왼쪽으로 공사 중인 코메디 프랑세즈의 임시 극장이 보인다.


다니엘 뷔렌의 기둥에 앉아 부서지는 봄볕을 쬔다.

음표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둔 듯한 현대조각품은 미학성과 효용성을 동시에 갖추었다. 기하학적인 공간구성에다 희고 검은 때를 두른 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물이 흐르는 하수구에 뿌리를 내리고 물을 빨아올려서인지 하늘향해 머리를 곶추 세운 기둥들이 있는가 하면, 난장이처럼 땅바닥에 붙어 기는 음표 같은 것들도 있다. 어른 키만한 기둥에서 그 보다 키작은 몇 가지 기둥들이 네모지게 심어져 있다. 기둥 사이로 땅금표시를 해두어 건축물의 단면도를 보는 듯도 하고, 인공적인 현대판 폐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두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필립 글래스 풍의 세련된 반복음을 낼듯한 기둥들 사이로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기둥 꼭대기를 딛고 올라 발레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의자 높이의 기둥에 앉아 책을 읽는가 하면, 먹을거리를 꺼내 우적우적 씹기도 한다. 나처럼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문자를 보내는 이도 쉽게 눈에 띈다.

팔레 루아얄 안뜰로 들어서며 새삼 오랜 세월을 간직한 포석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혁명가들이 세도가들이 이도저도 아닌 보통사람들이 무수히 딛고 스쳐지나간 포석들! 이 바닥에 핏자국이 선연하기도 하고 불타던 연기 속으로 잿자루가 깔리기도 했으리라. 총든 보초들의 급박한 발자국 소리가 울리기도 하고, 야회에 가는 우아한 여인들의 들뜬 사각대는 치마끌리는 소리와 함께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