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펠탑이라고?
파리의 상징물은 무엇일까? 특히 관광 측면에서 본다면? 어쨌거나 통계로 보면 파리에서 유료 관광객을 가장 많이 맞이하는 곳은 바로 에펠탑이다.
파리에 오는 사람이면 에펠탑의 이름이나 생김새쯤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다. 에펠탑은 누가 언제 무엇으로 만들고 높이가 얼마라고 한두 마디 거들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파리 안 가본 사람이 가본 사람보다 더 잘 알 지도 모른다.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과 그 해 파리에서 열린 세계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한 구조물인 에펠탑은 1889년 3월 31일에 낙성식을 한다. 탑을 세운 건축가는 귀스타브 에펠이고, 탑을 세우는 데는 2년 2개월 5일이 걸린다. 처음부터 승강기가 설치된 에펠탑의 높이는 300미터였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되었다. 이 높이는 1930년도에 뉴욕 맨하탄의 크라이슬러 마천루가 나타나기까지 깨지지 않았다. 파리 어디서든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데가 없었다!
온통 석조 건물들로 가지런히 키를 맞춘 계획 도시에 어느 날 시커먼 철 괴물이 하늘을 찌르며 우뚝 솟아났다고 상상해보라. 한쪽에는 앞선 건축술로 이렇게 높은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곱지 않은 눈을 흘기며 입 방아를 찧기도 했다. 에펠탑이 파리의 아름다운 경관을 해친다는 게 그 이유. 그 가운데 유명한 예술가들도 한몫 하였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건축가인 샤를 가르니에, 음악가 구노, 시인 르콩트 드 릴, 소설가 모파상 등. 특히 모파상은 에펠탑 꼴 보기가 싫어서 에펠탑 레스토랑에 와서 식사를 하노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어디 가나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들은 핍박 받는 것일까. 30대의 렌조 피아노와 리차드 로저스라는 두 젊은이가 설계한 퐁피두 센터(1977년)나, 이오 밍 페이가 만든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1989년) 역시 에펠탑의 전철을 밟지 않았는가. « 분위기 맞지 않게시리 이런 꼴사나운 걸 다 만들다니, 원. »
하늘로 오르고픈 바벨탑의 욕망을 대담하게 펼쳤다고 생각한 이들도 분명 있었으리라. 시인 아폴리네르와 다재 다능한 장 콕도, 화가 쇠라, 들로네 등은 에펠탑 찬미자들이었다.
네 발을 엉버틴 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대가리를 쭉 빼든 철골 구조물을 허물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1909년에 이 구조물은 20년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예정대로 철거될 운명이었다. 그때 계획대로 철거되었더라면…?
2. 우리 집 창문에는 에펠탑이 보여요.
우리 집 거실의 창문으로 언제나 에펠탑이 보인다. 낮에는 낮대로, 흐린 날이면 흐릿하게 맑은 날이면 뚜렷하게, 밤이면 밤대로 또 다른 모양 새로 불 켜진 에펠탑이 보인다. 보는 이의 마음 상태나 그때그때의 날씨에 따라 에펠탑은 다르게 보이기 마련. 하늘이 맑고 푸른 여름 날에 보는 에펠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부는 날 심사가 울적할 때 바라보는 에펠탑은 어떤가. 안개 낀 날은 어떻고, 시커먼 먹구름이 뒤덮인 날은...
에펠탑은 무선 송신 안테나를 설치하여 실용성을 인정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방송 안테나를 새로 머리에 이게 되어 에펠탑의 키는 20미터가 더 커진다.
우리 집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에펠탑은 그리 크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저 멀리 있는 에펠탑의 희미한 그림자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아니다. 그럼 뭐란 말인가. 우리 집 창문으로 보이는 에펠탑도 분명 그 유명한 에펠탑임에는 틀림없다.
에펠탑 무게는 얼마? 기껏 10,100톤. 18,000 개의 철골을 2백5십만 개의 리벳으로 조립해 놓은 구조물은 그 본디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 놀라지 마라. 탑 무게는 탑을 감싸는 원기둥에 해당하는 공기보다 가볍다는 사실에. 1제곱센티 미터의 땅에 미치는 하중은 4킬로그램으로 그저 의자에 앉은 사람의 하중 정도. 그만큼 탑의 무게를 분산시키려고 과학적인 설계를 했다. 이 괴물의 네 발은 우연히 네 발은 아닌 셈. 하중을 골고루 분산시키기에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 철골 사이 사이의 빈 공간 역시 공기의 흐름을 쉽게 하여 하중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어디 하중 분산뿐인가. 구멍이 숭숭 뚫리지 않았더라면 세찬 바람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겠는가.
2000년의 화려한 불꽃 축제를 기억하는가? 나는 얼마 전에 뒤늦게 그 장관을 간추린 화면으로 보았다. 그때 한국에 있었던 나는 남의 잔칫상에 끼여드는 기분이라 새 천년 축제를 일부러 외면해버렸다. 두고두고 재방송도 한 모양인데 그것마저 애써 등 돌려버렸다. 들은 소문을 종합하면 세계를 통틀어 파리 에펠탑의 새 천년 쇼가 장땡이었다나 어쨌다나…
3. 파리는 항구, 에펠탑은 등대
에펠탑에 붙어 먹고 사는 인간들은 참 많다. 표 파는 사람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 기념품을 파는 사람, 엘리베이터 조작원 등. 그리고 또 있다. 에펠탑을 관리하는 수많은 인력들. 이들은 새벽마다 어김없이 안전점검을 한다.
조상들의 문화유산만 갉아먹고 살아도 굶어죽진 않을 프랑스 사람들. 난 이들이 부럽고도 존경스럽다. 이들은 문화 유산을 그렇게 잘 보관할 수가 없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프랑스 사람보다 더 잘 관리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꼭 유명 기념물이나 박물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예로 2차 대전 중에 총살 당한 흔적이 있는 담벼락을 보라. 누가 언제 이 자리에서 독일군에게 총살당했다는 문구를 새긴 작은 판이 붙어 있고, 판 아래에는 작은 쇠고리도 박혀 있다. 때가 되면 이 쇠고리에 꽃다발이 꽂힌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해야 마땅하다.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 아닌가.
에펠탑은 날마다 안전점검을 받는 한편, 5년 마다 옷을 갈아 입는다. 새 옷으로 단장하는 데 필요한 물감이 무려 7000톤.
이 날렵한 탑은 아주 강한 바람에도 꼭대기가 10센티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열을 받으면 키가 10센티 정도 커진다. 엘리베이터는 탑의 허허로운 내장 속을 현기증 나게 오르내린다. 들보와 도리들이 회오리 치며 감아 올라가는 골조 속을 세 단계를 거쳐서야 276미터 공중에 오른다. 높이 57미터의 1층을 지나 2층에서 내려, 3층 꼭대기를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한다. 다리 힘에 자신 있고 시간이 충분하면 계단을 걸어 오를 수도 있다. 모두 1652계단. 엘리베이터를 탈 때만 돈을 내는 건 아니다. 계단을 탈 때도 역시 돈을 내야 한다. 안전문제 때문에 2층까지만 계단을 이용할 수 있다. 올라갈 때는 좀더 걸리겠지만 걸어내려 올 경우, 2층에서 지상까지는 약 15분, 1층에서 지상까지는 8분 정도면 된다. 여름철엔 걸어 내려오는 게 훨씬 빠를 수 있다. 꼭대기를 오른 사람보다 1층을 구경한 사람이 훨씬 적을 것이다. 1층에는 에펠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볼 수 있고, 새 천년 맞이 에펠탑 행사장면을 화면을 통해 구경할 수 있다. 식당가가 있고, 우체국이 있다. 에펠탑 우체국에서 그림엽서를 부치면 에펠탑 소인이 찍혀 날아간다.
저녁이면 에펠탑은 불꽃을 피운다. 머리에는 등불도 켠다. 에펠탑 꼭대기의 이 불빛은 어떻게 보면 탐조등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등대 불빛으로 보이기도 한다.
맞다, 맞아 ! 이른 저녁이면 머리에 불을 켠 탑은 등대로 변신한다. 어떤 날은 구름 사이로 어떤 날은 빗줄기 속에서 나그네의 길을 밝힌다. 어쩌다 방향을 잃은 배가 없나 하고 등대불은 360도를 돌아가며 사방을 비춘다. 검은 구름 사이로 한 줄기 서늘한 불빛이 천천히 돌아간다. 어두운 하늘로 불줄기를 내뿜는 광경을 보고 떠오른 것이 바로 전설적인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다. 등대 높이가 80미터에 이르러 인근 바다에 불빛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는 불가사의한 그 등대 말이다. 2년 전인가 프랑스 발굴팀이 지진으로 파괴된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잔해들을 발견해 인양하는 개가를 올린 적이 있다.
항구도 아닌 파리에 웬 등대라니. 바다가 없다고 항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센강은 하천 운송으로 유명했다. 센강 하류의 루앙이란 도시는 바다를 끼지 않은 내륙 도시지만 수출입 선적량이 대단한 항구도시다. 파리도 하천 교통이 꽤 발달한 항구도시. 예전만 못해도 지금도 화물선이 적잖이 다닌다. 철도 교통의 출현으로 화물량이 크게 줄어들어 이제 파리의 센강에는 화물선보다는 유람선이 주름잡고 있다.
에펠탑은 센강 가까이 우뚝 서서 불을 밝히는 등대다. 어찌 보면 빛의 도시 파리에 온 관광객을 호리는 이상한 불빛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호렸다는 사이렌처럼 여행객을 잡아 끄는 등불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에펠 등대는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환영처럼 보인다.
밤이 되면 파리가 잠들어도 센강은 흐르고 그 위로 등대불이 비친다. 길 잃은 길손이여 내 빛을 따르라. 지치고 외로운 나그네여 나를 벗삼아 편히 쉴지니.
4.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파리
해질녘에 에펠탑에 올라 지상을 내려다 보라. 불 켜진 파리의 야경을 에펠탑에서 굽어보는 것도 장관일 테지만, 그래도 밝은 낮에 멀리 바라보는 풍경이 단연코 낫다. 가장 좋은 때는 맑은 날 해질녘이다. 최대 가시 거리는 50킬로 가량. 꼭대기 전망대에 닿으면 태극기를 찾아보라. 서울까지는 8991km. 계단을 타고 오르면 전망은 더욱 좋아진다. 가운데는 에펠 사무실. 에디슨과 에디슨 딸을 맞는 에펠을 들여다보라. 에펠 사무실 한 켠에 화장실이 있다.
센강 수면에서 98미터인 몽마르트르 언덕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서쪽을 향해 서면 개선문이 보이고 샤이오 언덕도 바로 코앞에 들어선다. 고개를 조금 들면 그 뒤로 불로뉴 숲이 띠를 두르고 있고, 빌딩숲 신도시 라데팡스도 시야에 들어온다. 라데팡스 오른쪽 그러니까 북쪽이 내가 사는 곳이다. 센강을 따라 다리를 세 개 내려가면 자유의 여신상도 나타나고 원형 건물인 라디오 프랑스 방송국도 보인다. 왼쪽으로 계속 돌아보자. 샹드마르스가 바로 아래 펼쳐진다. 생시르로 이사 갔지만 이름은 여전히 군사학교인 에콜밀리테르와 유네스코 본부, 그 뒤로는 몽파르나스 타워가 시커멓게 버티고 서 있다. 그랑팔레, 콩코르드 광장, 밤낮없이 금빛으로 번쩍이는 돔 성당, 저 먼 쪽에 루브르도 들어오고 좀더 가면 노트르담 성당도 보인다. 더 멀리 눈길을 뻗으면 베르시의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도 희미하게 보인다.
130년 전 벌써 레고로 만든 파리의 지붕을 보라. 이 장면에서 제멋대로 마무리한 한국 도시의 지붕 을 반드시 떠올려야 한다. 건물 위로 조그만 원기둥이 다닥다닥 붙은 게 뭐냐고 묻지 말고 깨끗하게 정리된 지붕을 잘 살펴보라. 다시 센강을 굽어 보라. 그 사이 유람선이 지나가는 이에나 다리 너머 샤이오 궁 앞 대포분수가 뿜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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