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만에 6월 4일 새벽 센강 최고 수위가 6,10m에 달했다. 1910년의 8,62나 1982년의 6,18보다 낮았지만 대단한 수위다. 물이 불어날 때는 한 시간에 약 2센티 정도 올라간다. 물이 빠질 때는 그 보다 느려 1-2센티라고 한다. 1910년에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한 달 걸렸다. 이 번에는 빠지는 속도가 빨라 5-15일을 예상한다. 센강이 범람할 우려는 없었지만 침수위험은 있어서 강변을 따라 나 있는 RER C는 파리 구간에서 폐쇄되었다.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이 침수 예방 차원에서 작품을 옮긴다고 5일간 문을 닫는다. 본의 아니게 자연재해로 일용노동자인 파샤는 나흘 동안 실업자가 되었다.
심사가 울적하기도 하고 세기의 강물을 구경하고픈 호기심이 발동해서 소파에서 뭉거적대다가 프랑스 앵포에서 "세기의 강물"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박차고 일어났다. 벌써 열한 시 무렵이었다. 공연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토요일 오전에 센강을 구경하러 나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RER B 생미쉘 노트르담 역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뤽상부르에서 부랴부랴 내렸다. "다음 역이 샤틀레 레알입니다."하는 방송을 듣고서 가까스로 내렸다. 오랜만에 불미쉬를 따라 걸어내려갔다. 학생시절이 절로 떠오른다. 서점 가는 대신 구경을 가다니. 그래도 이 동네 오면 반드시 들르던 곳이 지베르 조젭 서점이었는데! 수플로 길을 지나며 보수공사를 마치고 말끔해진 팡테옹을 사진에 담았다. 퀴자스길도 반가웠다. 낯익은 거리지만 그새 몇몇 상가들이 상호를 바꾼 게 눈에 띄었다. PUF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했던 옷가게 Delaveine도 그 새 Nike Running한테 흔적없이 밀려나버렸다. 자본의 흐름은 눈물도 피도 없다. 좀 더 내려가자 한때 잘 나가던 퀵(Quick)을 밀어내고 영국의 막스앤스펜서 식료품점이 새로 선보였다. 이걸 보면서 속으로 꽤 놀랐다. 이럴 수가! 무차별 무제한 경쟁!
학교길을 건너면 대규모 보수공사를 하는 중세박물관이 나온다. 언제부터 간다 간다 하면서 아직도 미루고 있는 박물관이다. 생미쉘 분수대 앞은 관광객들로 꽉 들어차 있다. 역시 분수대를 한 장 찍었다. 노틀담이 가까와지자 센강둑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손에 사진 도구를 들지 않은 사람은 없지 싶다. 너도 나도 사진 기자 사진 작가다. 범람을 가까스로 면한 센강물 보러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참인데 금세라도 강둑을 덮칠 듯 넘실대는 누런 흙탕물을 보고 뭐가 그리도 좋은지 저리도 눈들이 번득일까? 평소보다 강폭은 두 배 이상 더 불어보인다. 센이 이렇게 큰 강이었나. 강둑에 갇히고 둔치를 내주고 안쪽으로 샛강 만하게 흘러가다가 웬걸 배가 불러터질듯한 산모의 배처럼 불어난 강물은 극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세기의 강물"이라고 야단법석을 떠나. 둔치가 다 잠기고 강둑을 가득 채우고 강둑을 코 앞에서 위협할 판이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물들이 흘러나왔지.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이걸 놓치면 구경꾼이 아닐 터. 주말 맞아 산책나온 시민들과 볼거리 사냥에 나선 관광객들이 합쳐져 장날을 방불케한다. 찍는 대상은 다 센강물 풍경이다. 오늘의 최고 주인공은 바로 센강물!
아랫도리가 다 잠겨버린 나무를 보고 그래도 물이 20센티는 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두 박물관이 닫아도 파리는 관광객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물이 불어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센강이 더 없이 훌륭한 볼거리가 되었다. 구경을 좋아하는 시민들과 관광객이 강변을 빼곡 메웠다. 센강이 아니더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다를 사진도구를 들고 싱글벙글이다. 철도 파업으로 교통편이 불편해지고 루브르와 오르세가 문을 닫아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지라도 좀체 보기 힘든 풍경을 보고 담느라 마냥 즐겁다. 둑방길과 다리 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센강과 센강의 다리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맞기는 참 오랜만일테다. 딱히 계획을 한 것은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걷기로 했다. 광기의 깃털을 달고 온 파리를 헤매는 네르발은 아니어도 센강을 따라 사진을 찍으며 터벅터벅 걷는다. 지쳐빠져 나가떨어질 때까지 걷다보면 갑갑함도 좀 가실 테고 어지러운 머릿속도 정리가 될 지도 모른다.
Petit pont에서 Pont au double쪽을 보며
Petit pont
1910년 기록에는 한참 못미친다. 무려 250센티.
Pont St Michel, 대법원, 생샤펠의 첨탑도 보인다. 큰물의 공격에 나폴레옹은 잘 버티고 있다.
대법원쪽 강둑
퐁뇌프(Pont Neuf)는 역시 튼튼하다.
물에 잠겨버린 베르 갈랑(Vert galant) 정원. 시테섬이 끝나는 이곳에서 두 줄기 물길이 하나로 합쳐진다.
몇 해 전 아주 기온 높던 밤 오른쪽 끄트머리에서 피크닉을 했다. 밤 기온이 거의 30도에 가까워 밤이 깊어도 사람들은 집으로 향할 줄을 몰랐다. 파리의 밤이 이렇게 북적이고 들뜬 날도 없었지 싶다. 강변에 바람쇠러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울어져 장날을 방불케했다.
우리가 앉았던 곳은 은행나무와 마로니에 사이였나? 루브르 바로 앞쪽의 튈르리 공원의 잔디밭도 썩 괜찮은 곳이지만 파리에서 가장 좋은 피크닉 장소는 바로 여기다. 이런 정보를 그냥 제공하다니!!!
세느강 구조대 본부
주인이 피난간 수상가옥배, 파리의 오작교 Pont des arts,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쪽 강둑이 아슬아슬하다.
Pont du Carrousel
Pont royal. 왕의 다리는 가운데가 배불뚝이다.
오르세도 루브르와 같은 운명.
물에 잠겨 허우적대는 바토뷔스 표지판.
문 닫힌 오르세.
솔페리노(Solferino) 인도교.
금세라도 출발 태세인 수상 가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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