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채집가의 꿈

명아주와 비름

파샤 (pacha) 2017. 8. 2. 05:19

어렸을 때 식물도감이나 동물도감을 그렇게 갖고 싶었다. 이런 책은 물론 우리 집에서 내가 접할 수 있는 책이라곤 교과서와 전과가 전부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재미난 동화책를 빌려보거나 어깨동무 같은 월간지를 볼 수 있었지만 여름방학 때 단골 과제로 해가야 하는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을 할 때면 동물도감과 식물도감이 너무 아쉬웠다. 꽃은 그렇다 치고 길섶이나 들판 산에서 마주치는 나무나 풀 이름을 알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부르는 그런 이름이 아닌 학명에 해당하는 이름을 알고 싶었다. 뺍제이가 아니라 질경이, 개멀구가 아닌 까마중, 모메싹이 아니라 메, 무싸리가 아니라 족제비싸리...

프랑스에 와서 고향에서 보던 들풀을 다시 만났을 때 참 반가웠다. 질경이, 쇠비름, 명아주, 개망초, 고들빼기, 비름, 개밀, 까마중, 가죽나무, 토끼풀, 메 ... 


프랑스 와서 놀란 것 가운데 하나는 식물의 범람이다. 파리쪽은 서울보다 강수량은 반 정도인데 비오는 날은 두 배다. 이런 기후 조건에서 식물이 참 자란다. 같은 종이라도 키가 훨씬 크게 자라고 잎이 그렇게 윤기 자르르르 할 수가 없다.


늘 도투라지라고 부르던 명아주가 두 달 사이 이렇게 자랐다. 쏘 성으로 들어가는 들머리 공터에 유월말엔가 돋기 시작하더니 금새 이렇게 커버렸다. 공사장의 가건물이 철거된 자리에 어느 날 도투라지나 돋아났다. 누가 씨를 뿌린듯 한꺼번에 나타났다. 이젠 거의 숲을 이루었다. 새순을 꺾어 나물로 먹던 거였는데... 


며칠 전 일이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중국 사람 몇이 명아주 숲에 붙어 있었다. 아시아인이면 모두 중국인으로 치부해버리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아무튼 중국사람이 가장 많으니 어쩌랴. 저들도 도투라지를 꺾어 나물로 먹나? 오늘 아침에 도투라지 숲을 지나며 관찰해 본 결과 도투라지 몇 포기가 목이 잘려버렸다.



명아주 틈새를 헤집고 다투지 않고 잘 자라는 비름. 비름과 명아주는 밭언저리나 밭둑 산자락 어디서도 쉽게 마주치던 풀들이다. 비름도 나물로 먹던 거다. 도투라지와 비름을 보며 나물이 생각났다기 보다 시골에서 지천으로 자라던 광경이 떠올라 더욱 눈길이 간다.


 2017.08.17


17.08.19

명아주 군락에는 피(?)도 꼽싸리 끼어 자란다. 영양분이 적은 쪽의 도투라지. 차이가 두르러진다.


17.08.22


17.09.02


17.09.18

비가 온 뒤 쓰러진 도투라지들. 우리 할매가 멀때 장승 같다 하는 표현을 자주 쓰곤 했는데 별 거 없이 키만 큰 사람을 그렇게 빗대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자라다가 비에 꺾어진  풀들이다.


17.10.08 비 온 뒤 쓰러지고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 도투라지들.


그래도 몇 녀석은 꼿꼿하다.



17.10.12

며칠 전 출근길에 보니까 도투라지 숲이 사라졌다.


무성하던 도투라지 밭이 신축 아파트 분양 사무실한테 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그래도 좁아터진 한 자락을 헤집고 도투라지는 자란다. 겨울에도. 

바로 오른쪽 뒤로 드러난 것이 분양 사무실 가건물이다. 201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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