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연

로버트 윌슨의 [거실], 쉴리관 2층.

파샤 (pacha) 2013. 12. 1. 06:53

거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게 뭘까? 윌슨의 거실에서는 의자다. 의자 위쪽으로 조각이 놓이고 신발이 놓이고 사진이 그림이 위로 걸린다. 이것은 일반적인 박물관의 전시 질서다. 무거운 것은 아래에 올라갈 수록 가벼운 걸 전시. 

그런데 거실 입구에 의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건가? 앉기 위한 의자가 보는 의자로 바뀌어 박물관 물건이 된다. 전시 광고에 등장하는 이 거꾸로 메단 의자는 19세기 미국 청교도인 쉐이커(shaker) 교도들이 쓰던 의자다.


파우스트 박사의 연금술 실험실보다는 잘 정리되고 잘 어질러놓았다. 잡동사니를 끌어모아 세련되게 전시한 거실은 그럼에도 사람 냄새가 덜 풍긴다. 뒤죽박죽을 질서정연의 상태로 꾸며놓았다. 발굴과 수집 그리고 전시의 공간인 거실-전시실-박물관. 이스탄불의 풍속 풍물을 전시한 오르한 파묵의 박물관을 한번 가보고 싶다.


[오렐리아 Aurélia]의 화자는 정신병원의 병실에서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갖가지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자꾸만 달아나는 정신의 가닥을 잡는다. 카이로와 콘스탄티노플의 기념품들이 줄지어 나오고 자신이 읽었던 책을 뒤이어 정리한다. 마지막엔 연애편지가 나온다. 정신병 환자가 이런 순간에 놀라울 만큼 명징해진다. 추억을 담고 있는 이 물건들을 분류 정리하면서 깨어진 평온을 되찾고 일종의 행복감까지 맛본다.


뉴욕에 있는 윌슨의 거실과 롱 아일랜드의 워터밀(Watermill) 작업실을 옮겨온 것으로 윌슨의 일상세계를 드러내는 600여 점의 오브제로 꾸며진다. "내 작업에 영향을 끼친 모든 오브제들입니다. 나한테 살아있는 도서관 같은 것들이고 나는 이 물건들 틈바구니에서 살고 싶어요." 하고 윌슨은 말한다. 골동품점을 방불케 하는 복잡다단한 수집품들은 전 세계 미술품과 디자인 용품뿐만 아니라 벼룩시장에서 산 것들과 주운 오브제들도 있다. 예를 들어 뉴욕 시의 거리에서 주운 어린 여자아이의 장갑 같은 경우다. 이런 잡동사니 가운데는 파리의 오페라 바스티유 앞 쓰레기통에서 건져올린 것까지 있다.



서재에 선 아인스타인의 사진에서 윌슨은 [해변의 아인스타인]을 구상한다.


유명 연기자가 공연에서 신었던 신발뿐 아니라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신발도 있다.


뉴욕의 거리에서 주운 어린아이의 장갑 한짝. 화면 왼쪽에는 윌슨이 공연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의자가 놓여 있다.



여러 형태의 마스크와 석가모니 입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