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6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전리품으로 가져온 작품으로 나폴레옹의 실각 후에도 남은 몇 작품 가운데 하나.
예수가 처음 기적을 이룬 가나의 결혼식과 16세기 중반의 베네치아 공화국의 파티 장면을 겹쳐 생각해 볼 것.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과 한창 잘 나가던 16세기 중반의 베네치아의 파티. "사흘째 되는 날, 마리아와 예수가 갈릴레이 지방 가나라는 마을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는데..." 인물들의 다양한 복장은 16세기 베네치아풍이다. 오른쪽 화면에 주방장이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을 잔에 따뤄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본다. 왼쪽 맨끝 식탁에 나란히 앉은 남녀가 신랑, 신부다. 시동이 신랑한테 시음해보라고 잔을 내민다. 이 포도주를 얻어 마신 하객들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 보통 잔치집에서는 좋은 포도주부터 꺼내놓았다가 떨어지면 나쁜 포도주를 내오게 마련인데, 이 집은 웬걸 더 좋은 술을 가져왔다 아니겠는가? 무대 뒤 계단 위에서는 음식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포도주가 예수의 피를 나타낸다면, 이건 예수의 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베로네제의 그림에서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 건축물은 연극이나 오페라 무대를 보는 듯하다. 기하학적이며 건축적인 원근법을 구사한다. 오르세 박물관에서 번듯하게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의 [쇠퇴기의 로마인들](1847)을 보면 배경을 베로네제의 그림에서 베껴 쓴 듯하다. 토마 쿠튀르를 토마 베로네제로 빗대어 부르는 이유다.
술 마시다 떨어지면 여기 와서 도움을 청하면 된다. 원래 베네치아의 산조르조 마조레 수도원 식당에 걸려 있었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바다쪽으로 보면 보이는 성당이 산조르조 마조레이다. 가운데 앞쪽에서 실내악 주자들은 누굴까. 사인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자기 자신이나 아는 사람들을 그려넣곤 했다. 흰옷 입고 첼로 켜는 베로네제, 붉은 옷의 콘트라베이스 주자 티치아노, 청색 외투에 분홍 셔츠의 바이올린 주자 틴토레토, 베로네제 뒤 바사노...
루브르에서 가장 큰 그림이 바로 베로네제의 [가나의 혼례잔치] (994*677 : 67,3 m2), 두 번째 큰 그림은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 (979*621). 믿기는가, 베로네제는 이 큰 그림을 고작 1562-1563년에 걸쳐 다 그렸다는데... 분명 남의 도움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복원할 때 3년(1989-1992)이 걸렸다.
눈이 시리도록 청신한 세잔의 초록은 베로네제한테 한 수 배운 게 아닐까.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하는 130명에 이르는 인물들이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한다. 후배 화가들이 많이 배운 점이다. 결국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이 거의 없다. 그저 나홀로소이다. 단체 초상화이면서 개인 초상화인 셈. 그렇지만 모든 인물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연기한다. 정면이든 측면이든 나름대로 잘 보여주려고 한껏 애쓴다.
결혼식 피로연은 패션쇼일뿐 아니라 다채로운 포즈 전시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환한 색채의 향연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베네치아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었으니. 술이 다시 나오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곧 춤이 뒤따를 테다. 한데 여자 쪽수가 절대 부족하다. 이럴 수가!
식탁 위의 다채로운 음식에도 한 번 관심 가져볼 일.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향연이 열리면 아흔 가지 음식이 나왔다던데... 잘 보면 터키로부터 가장 먼저 포크를 도입한 베네치아임에도 손으로 먹고 있다. 하긴 베르사유의 주인장 루이14세도 포크가 있는데도 칼만 쓰고 손으로 먹는다. 그게 군주의 식탁 에티켓이라나...
마주 보이는 [모나리자]가 적다고 실망한 사람들이 만족해 할 그림이다. 왼쪽 식탁 맨끝 남녀가 신랑 신부이다. 신부와 닮은 여인의 초상이 바로 이 그림 옆쪽 벽에 걸려 있다 : [아름다운 나니]. 하나 건너 뛰어 왼쪽에 [엠마오의 순례]의 오른쪽 화면에 아이 안은 여인의 얼굴과도 한 번 견주어 보라. 세 작품 모두 베로네제가 그렸으니 닮은 꼴이 나올 수 밖에. 다 빈치의 작품에서 곱슬머리의 인물들은 코가 닮았다. [성 안나,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의 안나, [세례자 요한], [모나리자], 그리고 아틀리에 작품인 [바쿠스].
[엠마오의 순례]는 베르사유의 '군신의 방'에도 걸려 있는데 이건 복제본이다. 베르사유의 헤라클레스의 방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루이14세한테 선물한 베로네제의 작품 둘이 걸려있다 : [레베카와 엘리제르](베로네제의 아틀리에 작품),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는 예수].
레안드로 바사노(Leandro Bassano : 1557-1622), 1578년 이후.
윗그림에서 베로네제 뒤에 자리잡은 악사(야코포)의 세 번째 아들이 그렸다. 물론 아버지 야코포의 손길이 많이 느껴진다.
인물들의 분주한 동작, 색채의 신선함은 바로크로 가는 전단계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에선 인물도 인물이거니와 사물들이 각기 제 존재를 뽐낸다. 앞 화면의 정물 묘사를 보라. 사람만 살아 꿈틀대는 게 아니라 사물들도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제 피로연이 끝나고 들썩들썩 춤출 때가 왔다.
제라르 다비드(Gerard David : 1450/1460-1523), [가나의 결혼식].
스페인 출신으로 브뤼헤에 정착한 부유한 상인인 주문자 부부를 화면 맨 앞 오른쪽과 왼쪽에 그려넣었다. 예식이 끝나고 술잔이 한 순배 돌아갈 참이다. 왼쪽 창문 밖의 풍경은 건축양식을 보면 브뤼헤임을 짐작케 한다. 베로네제의 피로연에 비하면 한참 소박하다. 부르주아의 결혼식 피로연을 연상케하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고 보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먹기만 하던 수도원 식당에 걸린 베로네제의 가나의 결혼식은 참 이상하다. 베네치아는 수도원조차 먹을 거리가 풍성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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