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넘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기, 소피 샤보, 갈리마르, 2008.

파샤 (pacha) 2020. 3. 7. 17:17



« 사람들이 시간의 지속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탓하며 한탄하는 일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자연이 내린 좋은 기억력을 통해 오래 전에 지나간 일들이 현재에 되살아나는 것처럼 느낀다. »



천재적인 예견자 타고난 유혹자, 신랄한 기질의 레오나르도 빈치(1452-1519) 세상만사를 알고 싶어한다. 천문학, 음악, 수학, 건축, 조각, 데생, 회화는 물론이고 물리학에서 식물학, 지질학에서 해부학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빈치의 지칠줄 모르는 호기심을 비켜갈 없다. 그렇지만 성대한 축제 조직을 위한 취향을 뺀다면 그가 수많은 작업들은 초벌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리하여 기껏 회화 가량만 확실하게 그의 작품으로 인정된다.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유명한 [수첩] 아니라면 무궁무진한 창조자의 시간 활용이 수수께끼가 되었을 한데 책에서 소피 샤보가 비밀을 캐내려고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배경으로 나온다.



소피 샤보, [레오나르도 빈치], 갈리마르, 2008.


역사상 가장 유명하지만 동시에 비밀도 가장 많은 빈치를 그저 타고난 천재 예술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으려고 하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데 전기의 장점이 있다. 생애 묘사가 간단 명료하지만 구체적이면서도 피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 같은 전기도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세르주 브람리(1988) 월터 아이작슨(2017) 전기에 비해 소피 샤보의 전기는 분량이 정도이다. 빈치의 전기가 자칫 자료 동원에 충실해 내용이 무거워지기 쉬운데 소설가 저자의 이야기 끌고가는 뛰어난 솜씨로 전기는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생애를 작품의 주문과 제작, 작품을 위한 선행 작업인 과학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그가 남긴 6 쪽에 이르는 수고본 [수첩] 기록을 뒤져 그의 시간활용은 물론 나아가 심리상태까지 파헤친다. 이런 과정에서 빈치가 메세나와 주변 인물들과 맺는 관계도 입체적으로 엮어나간다. 르네상스의 시대 분위기를 배경으로 연출해내는 빈치의 인간관계망을 유기적으로 드러낸 또한 전기의 좋은 점이다.


소피 샤보는 전기를 4부로 크게 나누고 장은 소제목을 달고 여러 개의 장으로 잘게 나누어서 읽을 부담이 적다. 가운데 컬러 화보 8쪽이 들어가 있다.


모든 분야 가운데 회화를 최고로 여기는 빈치는 « 회화의 과학성 » 추구한다. 결국 만능 과학자 빈치의 면모는 화가로 집결된다. 그렇지만 그의 대부분 회화작품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소피 샤보는 어쩌면 미완성이 완성이라는 현대성을 가진 빈치의 특징을 부각시킨다. 완성작의 밑그림 상태인 데생만으로도 빈치는 당대 모든 예술가들한테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빈치의 유명세는 정작 19세기 후반부터 생겨난 현상이다. 소피 샤보는 미술사학자의 날카로운 심미안으로 빈치가 미완성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이유와 때로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실험하는 빈치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낸다.


소피 샤보의 전기는 작품의 주문과 제작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생애를 조명하면서 빈치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 작품 세계까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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