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시간의 지속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탓하며 한탄하는 일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자연이 내린 좋은 기억력을 통해 오래 전에 지나간 일들이 현재에 되살아나는 것처럼 느낀다. »
천재적인 예견자에 타고난 유혹자, 신랄한 기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세상만사를 다 알고 싶어한다. 천문학, 음악, 수학, 건축, 조각, 데생, 회화는 물론이고 물리학에서 식물학, 지질학에서 해부학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도 다 빈치의 지칠줄 모르는 호기심을 비켜갈 수 없다. 그렇지만 성대한 축제 조직을 위한 취향을 뺀다면 그가 한 수많은 작업들은 초벌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리하여 기껏 회화 열 두 점 가량만 확실하게 그의 작품으로 인정된다. 몇 천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유명한 [수첩]이 아니라면 무궁무진한 이 창조자의 시간 활용이 수수께끼가 되었을 법 한데 이 책에서 소피 샤보가 그 비밀을 캐내려고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배경으로 나온다.
소피 샤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리마르, 2008.
역사상 가장 유명하지만 동시에 비밀도 가장 많은 다 빈치를 그저 타고난 천재 예술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꿰뚫으려고 하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데 이 전기의 장점이 있다. 생애 묘사가 간단 명료하지만 구체적이면서도 피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 같은 전기도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세르주 브람리(1988)나 월터 아이작슨(2017)의 전기에 비해 소피 샤보의 전기는 분량이 반 정도이다. 다 빈치의 전기가 자칫 자료 동원에 충실해 내용이 무거워지기 쉬운데 소설가 저자의 이야기 끌고가는 뛰어난 솜씨로 이 전기는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생애를 작품의 주문과 제작, 작품을 위한 선행 작업인 과학적인 연구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그가 남긴 6천 쪽에 이르는 수고본 책 [수첩]의 기록을 뒤져 그의 시간활용은 물론 나아가 심리상태까지 파헤친다. 이런 과정에서 다 빈치가 메세나와 주변 인물들과 맺는 관계도 입체적으로 엮어나간다. 르네상스의 시대 분위기를 배경으로 연출해내는 다 빈치의 인간관계망을 유기적으로 드러낸 점 또한 이 전기의 좋은 점이다.
소피 샤보는 전기를 총 4부로 크게 나누고 각 장은 소제목을 달고 여러 개의 장으로 잘게 나누어서 읽을 때 부담이 적다. 책 가운데 컬러 화보 8쪽이 들어가 있다.
모든 분야 가운데 회화를 최고로 여기는 다 빈치는 « 회화의 과학성 »을 추구한다. 결국 만능 과학자 다 빈치의 면모는 화가로 집결된다. 그렇지만 그의 대부분 회화작품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소피 샤보는 어쩌면 미완성이 완성이라는 현대성을 가진 다 빈치의 특징을 잘 부각시킨다. 완성작의 밑그림 상태인 데생만으로도 다 빈치는 당대 모든 예술가들한테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다 빈치의 유명세는 정작 19세기 후반부터 생겨난 현상이다. 소피 샤보는 미술사학자의 날카로운 심미안으로 다 빈치가 미완성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이유와 때로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실험하는 다 빈치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그려낸다.
소피 샤보의 전기는 작품의 주문과 제작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생애를 조명하면서 다 빈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 작품 세계까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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