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넘어서

위고의 [라인강]과 라마르틴의 [동방여행]

파샤 (pacha) 2020. 5. 9. 04:03

Victor Hugo, Oeuvres Complète : Voyages, Robert Laffont, 1987.
라마르틴, [동방여행]

어제에 이어 계속 위고의 [라인강] 여행기 결론 부분을 읽고 있다. 이 책은 논문쓸 때 중요한 자료여서 열심히 읽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많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평소에도 이렇게 시간이 계속 주어진다면...

대부분 여행기가 그렇듯 실제 여행 일정에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집어넣은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요소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제 여행이란 늘 예기치 않은 사건이라든지 신기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이야기 되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소개된다. [라인강}에서 21번째 편지가 바로 삽인된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다. [미남 페코팽과 미녀 볼두르의 전설 Légende du beau Pécopin et de la belle Bauldour]

 

여행기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좋은 전략으로 전설적인 이야기를 삽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라마르틴의 [동방여행 Souvenirs, impressions, pensées et paysages pendant Un voyage en Orient(1832-1833) ou Notes d'un voyageur]에도 마지막 부분에 본인이 직접 여행하지 않는 지방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남긴 여행기로 채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의 정보요원(?) 테오도르 라스카리스(Théodore Lascaris)가 10년간 동방에 체류하면서 베두인족들의 풍습과 역사를 적은 노트가 오리지날이다. 원래 그리스 조상을 둔 라스카리스(비잔틴 황제 테오도르 라스카리스와 연결지은 것은 라마르틴이 부풀린 것이다)는 당시 피에몬테에 속했던 1768년 니스에서 태어났고, 1798년 나폴레옹이 몰타섬을 정복했을 때 몰타의 기사였다. 라스카리스는 나폴레옹에 매료되어 토목기사 자격으로 이집트 원정대를 따라간다. 카이로에서 조지아 여인과 결혼하고 아비시니아에 프랑스 왕국 설립을 꿈꾼다. 1801년 마르세유로 돌아와 나폴레옹이 제안한 부도지사를 마다하고 크림반도로 간다. 크림 반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다. 이후 시리아를 헤매다가 사이다의 프랑스 영사한테 받아들여진다. 콘스탄티노플과 트리폴리에서 미치광이로 취급받는다. 1809년 라스카리스는 알레포에서 만물상인 파탈라를 만난다. 파탈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라스카리스를 정신이 돌았다고 여긴다. 파탈라는 7년 계약으로 라스카리스와 함께 하마, 홈스, 다마스, 바그다드, 콘스탄티노플로 오가는 행상의 동행이 된다. 1812년 다마스에서 홈스를 가는 중에 레이디 스탄호프를 만난다. 그녀 역시 라스카리스를 범아랍 프로젝트에 활용하려고 생각했으나 결국 미친 사람으로 판단한다. 1814년 스미니르에서 프랑스 영사가 초등학교 교사로 앉힌다. 부인과 헤어지고 지중해를 떠돌다가 카이로로 간다. 알렉산드리아의 프랑스 영사의 주선으로 메헤메드 알리의 아들 이스마엘의 프랑스어 가정교사가 된다. 아랍어를 마스터한 다음, 어느 누구도 감히 해본 적이 없는 여행을 떠난다 (실제 18세기 부터 있었지만 라마르틴은 과장한다). 시리아인 파탈라와 함께 아라비아 사막의 베두인족들의 텐트촌을 찾아 행상을 한다. 7년 동안 기록한 여행기를 나폴레옹한테 전달하려고 했을 때 나폴레옹은 막 실각한 참이었다. 라스카리스는 카이로에서 가난하게 죽으면서 재산이라고는 이 원고 밖에 남기지 못한다. 영국 영사가 이 원고를 입수하여 본국에 런던에서 파괴해버렸다고 전해진다. 실제 라스카리스는 모든 사람들한테 망상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로 비친다. 1817년 아마도 메흐메드 알리의 계승권자한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혐의로 독약 암당해 죽는다. 한편, 파탈라는 1790년 무렵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난 기독교도이다. 파탈라 사이그는 1844년 라마르틴의 주선으로 알레포의 프랑스 영사관 통역 보조관으로 임명고 파리에 초청받기도 한다. 

그런데 라마르틴의 통역 마졸리에(Joseph Mazolier)가 라스카리스와 동행한 시리안인 친구를 아는데 그 친구가 여행 동안 라스카리스를 위해 적은 노트가 있다고 말한다. 라스카리스가 죽으면서 받기로 한 봉사료를 받지 못해 그 친구도 가난해져 라타키(Latakie)에 돌아와 어머니한테 얹혀 산다. 라마르틴은 그 원고를 사기로 한다. 그가 파탈라 사에기르이다. 라마르틴은 자신의 통역자한테 유럽어로 번역하라고 주문한다. 이걸 다시 라마르틴이 프랑스어로 옮긴다. 실제 1년간 라마르틴의 통역으로 시리아, 갈릴레, 아라비아를 따라다닌 마졸리에는 아랍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그것을 라마르틴이 손을 보아 자신의 [동방여행] 마지막에 수록한다. 라마르틴은 3중 번역이라고 했지만 2중 번역인 셈이다. 라마르틴이 이야기의 분량을 반으로 줄이긴 했지만 통역이 번역한 텍스트에 비교적 충실히 옮긴다. 파탈라 사에기르의 이야기는 [동방여행] 폴리오 판에서 145페이지를 차지한다.

파탈라 사이그의 원고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1991년에 프랑스어 영어 아랍어를 다 잘하는 인류학자 조젭 셀로드(Joseph Chelhod)가 번역하여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사막과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의 분량은 라마르틴 텍스트의 두 배에 가깝다. 라스카리스가 아랍인으로 변장하고 유목민 생활하는 부족 속으로 들어가 체험한 여행기는 사라지고 동행인 시리아인 파탈라 사이그가 남긴 여행 노트이다. 이 부분만 따로 책이 나와 있는데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 Le Désert et la gloire : les mémoires d'un agent syrien de Napoléon par Fathallah Sâyigh, traduit de l'arabe d'après l'unique manuscrit de l'auteur, présenté et annoté par Joseph Chelod, Gallimard, 1991. 이 책을 퐁피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얼마 읽다가 두었는데 논문 마치고는 도서관과 거리가 멀어져 이 책을 마저 읽지 못했다.

파탈라 사에기르(Fatallah Sayéghir)가 유럽인 라스카리스를 동반하여 아랍 사막에서 떠돌이 생활하는 아랍인들한테 체류한 이야기이다. 터키제국이 점점 약해지면서 떠오르는 아랍사막에 거주하는 와하비족들의 이야기다.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선조 와하비족이 부족국가를 세우는 서사시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여행기의 이야기는 두 가지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직접 체험담을 적은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체험담을 전달하는 이야기이다. 결국 파탈라의 이야기도 아라비아 사막의 텐트에서 밤샘하며 들려주는 와하비족들의 전설이나 전투에 얽힌 이야기는 옮긴 이야기인 셈이다.

 

네르발의 4부로 나뉘어진 [동방여행]에서도 각부마다 상상적인 이야기를 삽입한다. 그 삽입된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분량이 늘어나 4부 "라마잔의 밤"에서 [아침의 여왕과 정령의 군주 솔리만(Soliman)의 이야기]가 플라마리옹 문고판으로 100페이지에 이른다. [동방여행] 2권의 전체 분량이 357페이지를 고려하면 상당한 분량이다. 네르발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라마단 기간을 보내는데,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들은 이야기로 채운다. 특히 삽입된 에멘의 여황 발키스(Balkis)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Soliman)의 이야기는 천일야화의 분위기를 돋구는 허구적인 이야기이다.

 

위고의 분석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7세기 25개 국가로 나뉘어졌던 유럽의 정치 지형을 살피고 당시 2대 강국이던 터키와 스페인이 유럽에 위협국가라고 하였다. 터기는 무력을 통한 전쟁으로 정복하는 국가의 전형이고 스페인은 무력에다 상업과 책략으로 정복하는 나라이다. 결국 두 강대국은 골깊은 이기주의로 인해 통일감을 찾지 못하고 돈에 눈이먼 타락한 상업주의로 인해 강대국의 지위에서 밀려난다.

2세기 지난 19세기 중반 유럽이 경계해야 할 두 강대국은 러시아와 영국이다. 19세기 중반 유럽이 쇠약해져 유럽을 떠받힐 수 있는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밖에 없다. 반쯤 쓰러지고 곳곳에 깊게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늙은 유럽에서 살아남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바로 독일과 프랑스이다. 위고는 독일이 유럽의 가슴이라면 프랑스는 유럽의 머리라고 비유한다. 감정과 사고를 가진 국가, 다시 말해 문명을 가진 국가라고 판단한다.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용감하게 외출을 시도한다. 참을 만큼 참은 셈. 더 이상 감금생활을 이어가기 힘들다. 놀이터에 몇 집 아이들이 모여 같이 놀면서 시끌벅적해졌다. 바깥으로 나다니는 어른들도 부쩍 많아졌다. 지방으로 내려갔던 파리쪽 사람들은 올라오기도 하지만 조건이 되면 체류를 연장하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감금해제할 조건이 덜 갖추었졌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가게며 학교 그리고 문화시설이 점차적으로 다시 열리지만 아직 하루 2백명 사망자가 나오는 상태다. 마스크는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모양이다. 그렇게 마스크 쓸 필요없다고 거짓말치고 이젠 어떤 장소에서는 마스크 쓰지 않으면 벌금을 매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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