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금조치가 풀린 첫날 생활이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동증명서를 인쇄할 필요없고 가게가 열린 것 뿐인데...
해방감을 만끽하려고 외출했다. 희한하게 딱 맞던 모자가 헐거워졌다. 몸은 살이 불었는데 어떻게 머리는 줄어들었지, 그 참 희한하네. 바람에 날아갈까봐 몇 번을 만져야 했다. 오늘 아침까지 비가 내리고 그친 다음엔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분다.
화장실 전구 소켓에 문제가 있어 불이 나왔다 들어왔다 한 지가 오래 되었다. 아마 이사하고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은데. 워낙 낡은 거라 갈아끼워야 하는 것을 대충 손으로 만져 연결을 시켰다. 최근 들어 자주 접촉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 집의 전기설비는 모두 엉터리다. 이사올 때 새로 설치한 콘센트가 안 되는 게 여럿 생겼다. 욕실 천정의 전구는 여섯 개 중 두 개만 들어온다. 화장실 전구 소켓은 아마도 30년은 넘은 듯 보이는데...
나간 김에 모노프리에서 네 개 들이 파란색 볼펜과 전구 소켓, 그리고 몇 가지 식료품을 샀다. 작년엔가 새로 생긴 바로 옆 서점으로 처음 들어갔다. 동네 서점이라 크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 작았다. 옛날 고등학교 다닐 때 단골 서점 삼화서적 정도였다. 우리네 동네 서점과 크기는 별 차이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주인한테 책을 물었지만 없었다. 이왕 들어왔는데 하면서 서가를 훑다가 폴리오 문고판으로 작년에 새로 나온 샤토브리앙의 [아메리카 여행]을 사들고 나왔다.
전원을 내리지 않고 작업을 했다. 대신 장갑을 꼈다. 다 조립했는데 전구와 소켓의 접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살펴본 즉 제품에 문제가 있었다. 접촉부분의 두 돌출부 가운데 하나가 밑으로 꺼져 있는 게 아닌가. 전구를 넣을 때 안으로 들어갔다 놓으면 다시 밖으로 나와 고정되는 용수철형인데 아예 하나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수가 있겠지. 드라이버를 집어넣고 계속 만지다가 퍽! 불꽃이 튀고 소켓과 드라이버가 까맣게 변해버렸다. 젠장, 두 종류 가운데 두 배 비싼 제품을 선택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네. 둘 들어 있던 제품은 망가트린 제품 하나 가격이었다. 둘 들어 있는 걸 살 걸...
두꺼비집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해보았다. 다행 합선이 되었어도 퓨즈는 괜찮은지 전기가 들어왔다.
다시 외출복을 다시 껴입고 숨가쁘게 식식거리며 모노프리로 다시 갔다. 웬걸 아까는 아무 줄도 없었는데 입구에서 광장 끝까지 줄이네. 아 짜증! 브리콜렉스로 가서 사자. 닫혀 있다. 하는 수 없지, 이런 신경질.
다행 줄은 빨리 줄어들어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소켓만 사들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버리려고 가져갔던 건전지 두 개를 그대로 가져왔다. 비싼 것은 조립이 간단했는데 이번 것은 아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제품이다. 똑같은 종류의 소켓에 전구 갈아 끼우다가 부아가 치밀어서 운 적이 있다. 처음 파리에 와서 13구 스튜디오에 살 때 몇 시간을 낑낑 거린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분해하면 전부 부품이 네 개다. 다 조립했을 때 접촉부분과 전구부분이 팽팽하게 긴장이 유지되어야 완성품이 된다. 헐거우면 전구가 끼워져도 접촉불량으로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적당하게 조립하면 절대 안 된다. 이번에도 그 교훈을 잊어버리고 완전히 네 개로 분해하지 않고 셋으로 분해했다가 골탕을 먹었다. 그림에 나온대로 완전분해를 했어야 하는데... 그림을 보지 않고 무대포로 하다가...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려 겨우 성공했다.
하고 또 하고... 한번 잘못 돌려 놓으면 풀기도 힘들다. 무슨 이런 빌어먹을 기계가 다 있나. 프랑스 사람은 나보다 머리가 훨씬 좋단 말인가. 이러니 독일에 뒤지지. 기계는 간단하고 기능성이 좋아야 하는데. 이렇게 복잡해서야...
손가락이 얼얼하다. 다음엔 그냥 전구를 돌려끼우는 소켓을 선택해야지. 그럴 일이 언제 생길 지 모르지만... 이 소켓에 들어가는 전구 여분이 몇 있어 이 형태의 소켓을 산 거였는데, 5유로는 그냥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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