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 만한 프랑스 지방

2014년 마지막 날에 간 앙부아즈

파샤 (pacha) 2015. 1. 7. 03:06

달리는 거의 모든 구간이 진한 안개로 가려져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달렸다. 라발과 르망 사이 구간은 유독 심했다. 몽생미쉘 갈 때도 그랬는데 루아르 가는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다들 쌩쌩 달렸다. 140-150킬로로, 130킬로로 달려봐야 따라갈 수 없었다.


문닫는 시간에 가까스로 앙부아즈에 도착.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성은 언제 가도 두 개의 거대한 원형 성탑이 시선을 압도한다. 저 르네상스식 격자 창문에 어린 저녁 빛을 보라. 루이14세 시절에 일부 해체되고 나폴레옹 시절에 대부분 허물어져 왕이 머물던 두 본채만 달랑 남은 앙부아즈성은 그 불완전함 때문에 더욱 더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좇아 줄줄이 원정을 떠난 프랑스 왕들이 맨 처음 르네상스를 도입시킨 곳이 바로 앙부아즈성이다. 나폴리왕국이나 밀라노공국의 계승권을 빌미삼아 샤를8세, 루이12세, 프랑수아1세가 이탈리아 원정에 나선다. 원정에서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발전된 르네상스 문화를 수입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프랑수아1세는 뷔데, 마로, 뒤 벨레, 롱사르, 라블레 같은 국내 문인들을 후원하며, 이탈리아에서 안드레아 델 사르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벤베누토 첼리니 같은 예술가를 초빙한다. 15-16세기에 걸쳐 왕궁으로 쓰인 앙부아즈성은 그야말로 프랑스의 정치, 경제, 예술의 중심지가 된다. 샤를8세가 앙부아즈성에서 태어나며, 프랑수아1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며, 앙리2세의 자식들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발루아 왕조의 왕들은 떠돌이 기사처럼 산다. 예를 들어 프랑수아1세는 11778일의 통치기간 동안 8000일 정도를 여행하며 보낸다. 왕이 이동하면 약 만 명에 가까운 수행원과 궁정인이 뒤따른다.


앙부아즈성은 앙리3세 때까지 왕궁으로 쓰이다가 앙리4세가 파리쪽으로 왕실을 옮기면서 왕궁의 역할은 끝난다. 그렇지만 부르봉의 앙리4세, 루이13세, 루이14세는 숙박지로 쓴다. 1763년에 슈아즐(Choiseul) 공작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가 죽자 루이14세의 손자 팡티에브르(Penthievre) 공작이 사들인다. 프랑스대혁명기에 압류된 앙부아즈성은 한 차례 화재를 입고 나폴레옹 시절에 몇 차례에 걸쳐 해체된다. 왕정복고기에 팡티에브르의 유일한 상속권자인 오를레앙 공작부인인 마리 루이즈 아델라이드 드 부르봉(루이필립왕의 어머니)한테 넘어간다. 오를레앙 가문이 떠난 뒤 성은 육군성이 쓰게 된다. 


샤를8세와 루이12세와 연거푸 정략결혼한 부르타뉴 공작 안느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기억이 생생하다. 종교전쟁 초기이던 1560년 프랑수아2세를 앙부아즈성에 감금하여 제거하려다 실패한 프로테스탄트들이 체포되어 성의 발코니에 목매달린 슬픈 역사도 간직한다. 루이필립의 막내 아들 오말 공작한테 생포당해 끌려와 1848-1852까지 이 성에 머문 알제리의 수장(Emir) 압델 카데르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카를로스5세한테 패해 포로가 된 적이 있는 프랑수아1세는 1539년에 카를로스5세를 앙부아즈성에 초대한다. 카를로스5세의 행렬은 시내에서 바로 나선형으로 된 성문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온다.



루아르 강쪽으로 내려다 본 풍경.


사냥꾼의 수호성인의 이름을 딴 부속성당. 1493년 샤를8세 때 지은 건물로 말기 고딕양식. 이 안에 다 빈치의 유해 일부가 묻힌 무덤이 있다.


1871년에 유해 일부를 생위베르 성당으로 이장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무덤. 다 빈치는 프랑수아1세를 따라 1516년에 앙부아즈에 도착해서 1519년에 죽을 때가지 클로뤼세에 머문다.


짧은 겨울 날은 금세 어두워진다. 화면 오른쪽 위에 달이 떠 있다. 날이 저물고 추우면 구경하려는 의욕이 꺾인다. 게다가 2014년의 마지막 날. 

어두워지기 전에 앙부아즈성을 나와 클로뤼세로 향하다가 다리 아픈 일행이 있어 말머리를 돌린다. 하긴 가 보아야 안에도 못 들어갈 것을! 성벽을 따라 십오 분쯤 앞으로 죽 걸어가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지막 거처인 클로뤼세가 나온다. 

클로뤼세 때문인지 이탈리아 사람들이 앙부아즈에 많이 온다.


성에서 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자리잡은 제과점. 갈레트를 사러 갔다 없어 못사다. 주류가게에서 샴페인 한 병을 사들고 민박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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