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 만한 프랑스 지방

프랑스 인문학 토론장, Cerisy-la-Salle (노르망디 지방에 위치)

파샤 (pacha) 2012. 2. 18. 21:16

유월에서 구월까지 열리는 스리지라살의 콜로크에 참가하면 진지한 학문적 분위기는 물론 썩 좋은 노르망디 지방의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스리지의 분위기는 마치 귀족 집안에 초대받아 학문을 토론하는 인상을 준다. 학술토론에 참가하는 유명 학자들도 만날 수 있고, 한적한 시골에서 벌이는 학술모임도 상당한 수준이다. 콜로크는 일주일 동안 지속된다. 이 콜로크를 거쳐간 쟁쟁한 학자나 작가들의 사진을 보노라면 저도 모르게 뿌듯함이 느껴진다. 사르트르, 토인비, 롤랑 바르트, 이오네스코, 로브그리에, 미셀 투르니에...


Centre Culturel International de Cerisy-la-Salle, F-50210 Cerisy-la-Salle

Tél : 02 33 46 91 66 ; Fax : 02 33 46 11 39

Site : http://www.cerisy@ccic-cerisy.asso.fr


본채, 늦게 등록하여 좋은 방을 배당받지 못함. 앞에 보이는 의자에 둘러앉아 네르발 전문가들과 나눈 담소가 아직도 쟁쟁하다. 가슴 실팍한 노르망디 여인네들은 바깥까지 커피를 날라다 주었다. 실제 서빙하던 여인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었는데 가슴이 많이 파진 옷을 입었다. 

저 빛바랜 성채의 벽에서 묻어나는 시간의 깊이를 보라.



성 입구에 자리잡은 행랑채에서 파샤는 일주일을 묵었다. 창이라곤 지붕쪽에 달랑 하나 달린 방에 나무 마루바닥이라 삐걱대는 소리를 죽이려고 무지 애썼다. 물론 화장실과 샤워시설은 공동이다. 방문의 가장 큰 특징은 걸어잠그는 빗장이 없다는 것. 68년 이후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문을 걸어 잠글 수 없어 쉽게 남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데...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본채와 행랑채 사이의 정원에 선 나무들. 이쪽을 서성이며 한편으로 폭풍전야의 경제위기(2008년 리먼 브라더스)를 다른 한편으로 성수기 갓지나고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감내해야했다. 피로를 떨쳐버리기엔 너무 빠듯한 시간이라 머릿속이 흐리멍덩한데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겹쳐 학술대회를 참가하는 기분이 사뭇 무거웠다. 남들은 다 발표자로 참가하는데 난 그냥 청객으로 가는 것도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본채 전경, 식사 시간이 되면 본채의 종탑에서 종을 댕댕 친다. 1605-1620년 사이에 건축된 성은 문화재 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1819년 이래로 죽 같은 집안에서 소유하고 있다. 20세기 초 퐁티니라는 파리고등사범학교 선생님이 제자들을 모아 부르고뉴 지방에서 열흘간 휴가겸 학술모임(décade)을 가지게 된 것이 장소를 노르망디의 스리지로 옮겨 그 집안에서 계속 주관하고 있다. 고풍스런 도서관에서 학술대회가 진행되며, 본채의 꼭대기 방에서 모임을 따로 가질 수 있다. 첫째날 주인장이 바깥에서 한 바뀌 돌며 건물 소개를 하고, 저녁에 지붕밑방에 모여 학술대회의 역사적인 소개를 한 다음에 참석자들도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한다. 이때 노르망디의 사과주 칼바도스가 한 순배 돌아간다. 프랑스 여자와 결혼한 미국에서 온 친구와 식당에서 자주 어울렸는데 그 친구는 사과주인 시드르를 몹시 좋아하였다. 네르발 학회는 일본학자들이 삼분의 일을 차지하였다. 여기서 12대학 동문인 엔도(Endo) 선생을 다시 만났다. 물론 내노라 하는 네르발 전문가들이 거의 빠짐없이 참가한 학회였다. Jacques Bony, Henri Bonnet, Gabrielle Chamarat, Michel Brix, Gérard Gogez, Gérard Macé, Hisashi Mizuno, Guy Barthélemy, Pierre Campion, Dagmar Wieser, Françoise Sylvos... 마침 철학학회도 동시에 열렸는데 일본철학자가 창시한 철학이 주제여서 역시 일본 철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본채의 식당쪽


소우리, 1층은 컴퓨터실과 전시공간으로 2층은 숙소로 쓰인다. 다른 쪽에 마굿간을 개조한 숙소도 있다. 이 건물 아래쪽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한곳에는 제법 넓은 웅덩이가 있다. 산책하러 혼자 몇 번 이 웅덩이쪽으로 내려갔는데 난생 처음 보는 다람쥐보다 서너배 큰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서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동물을 발견하였다. 이 동물에 대해 혹 수달이 아니냐고 주인장한테 물었더니 아닐 거라며 쥐종류가 아닐까 하였다. 난 [시월의 밤]에 나온 수달이었으면 했는데 아니라니 뭐 어쩌랴.


곳간, 연극 공간으로 쓰인다. 곳간과 소우리는 기역자로 붙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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