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박물관

세잔(Paul Cezanne:1839-1906)

파샤 (pacha) 2016. 2. 15. 04:59

세잔은 기하학적인 공간 분할과 색채로 구축된 사물의 본질을 재현하려고 한 고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 하면서도 진정한 현대적인 화가다. 프랑스 화가 가운데 길 이름에 가장 많이 들어간 인물이 바로 세잔이다. 

세잔은 "모든 사물은 원기둥, 원구, 원뿔로 환원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세잔은 평생 색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화합을 추구한다. 이리하여 화폭의 평면과 깊이감이 양립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 결과 "면의 분할"을 통해 "깊이감"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세잔은 "자연에 버금가는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한 결과 어떤 요소도 어둠 속에 두지 않고 주변부 혹은 부차적인 부분을 없앤다. 일반적인 이야기이지만 필치가 뛰어난 그림들은 멀리 떨어질 수록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바로 세잔의 그림이 그렇다. 특히 [사과와 오렌지]라는 정물화를 가까이서 본 다음 몇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면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보들레르의 몇몇 시 구절을 줄줄 꿰고 있는 세잔은 루브르와 자연을 두 스승으로 삼았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서 특히 [등불]이라는 시를 좋아했다. [등불]이라는 시는 유명 예술가들을 촌평하는 시로서 루벤스, 다 빈치, 렘브란트, 미켈란젤로, 피에르 퓌제, 바토, 고야, 들라크루아의 작품세계를 소재로 삼는다. 푸생, 루벤스, 특히 베네치아파 거장들, 제리코, 들라크루아, 쿠르베, 마네... 배워야 할 모델을 두되 자신만의 "감각(sensations)"으로 작품화한다.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베끼면서 습작을 하지만 여기에 얽매이면 안되고 루브르를 비롯한 모든 학교를 벗어나서 자연에서 새로운 감각을 익혀야 한다.' 세잔은 조아킴 가스케(Joachim Gasquet)한테 이렇게 말했다. "자연을 통해 루브르에 가고, 루브르를 통해 자연에 되돌아와야 한다..." 1905년 세잔은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한테 이렇게 쓴다. "루브르는 읽기 배우기를 하는 책이다." 1899년에 앙부르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는 이렇게 이렇게 쓴다. "매일 오후 세잔은 루브르나 트로카데로에 거장들 작품을 복제하러 간다." 1863년에는 들라크루아의 [지옥에 가는 단테와 베르질리우스], 1864년에는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동들]을 복제한다. 1869-1875에 마네의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식사]를 여러 차례 따라 그린다. 결과로 나타난 것이 [현대판 올랭피아]이다.

 

인관과 자연의 조화, 면과 색의 교감, 선과 양감 그리고 색채가 조화를 이루는 통일된 공간, 무엇보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서 표현하려 애쓴다. 이런 면에서 분명 세잔은 정제된 자연에 인물을 조화롭게 배치시키는 푸생의 고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티브와 감각을 연결시켜 고전주의에 새바람을 불러넣으려 한다. 

1870년 처음으로 오르탕스 피케(Hortense Fiquet)와의 동거를 숨기려고 마르세유 근처 작은 해안가 마을 에스타크에 머문다. 빛이 부서지고 조화로운 풍광과 무성한 식물에 이끌려 그후 몇 차례 에스타크에 체류한다. 세잔이 에스타크에 머물 동안 르누아르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잔을 방문하고, 1883년 겨울에도 루누아르는 모네와 함께 에스타크를 찾는다.

 

[목매달아 죽은 사람의 집], 1873. 

제목과는 달리 이 집에서 목매달아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1872년 오르탕스 피케와의 관계를 아버지한테 숨기면서 오베르에 도착한 세잔은 일 년 넘게 머문다. 오베르에서 세잔은 가쉐 의사를 알게 된다. 피사로와 어울려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가쉐의 아틀리에에서 풍경화와 정물화를 서른 점 가량 남긴다.

 

난폭하고 육감적이며 병적인 주제([막달라 마리아], [아쉴 앙페레르])를 어두운 색조로 명암 대비가 뚜렷하게 검은 윤곽선을 넣어 넓고 두텁게 덧칠 하던 초기 테크닉에서 벗어나 인상주의(피사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시기의 작품은 밝은 색조와 잘게 써는 터치가 돋보인다. 가볍고 엷게 옆으로 써는 듯한 터치를 통해 빛과 대기가 떨리는 느낌을 주면서 사물의 형태가 허물어진다. 이런 효과를 표현하려면 노랑과 빨강에 파랑을 섞어야 한다고 세잔은 말한다. 점묘적인 터치를 중첩시켜 풍경의 요소들을 견고하게 구성한다. 몇 부분의 오톨도톨한 터치와 중심 주변을 구성하는 기하학적인 형태(주로 삼각형)가 풍경에 농도와 양감을 부여한다. 늘 인물을 등장시키는 피사로의 풍경과 달리 인물이 없는 조용한 풍경이다.

 

 

[어느 농가의 뜰], 1873년께. 

지붕과 벽의 가로 선과  나무들의 세로 선 추상적인 하늘을 배경으로 조화를 이루고 건물의 부피감으로 화면이 가득 차 있다. 세잔은 수평선은 넓이를 수직선은 깊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세잔의 그림에서는 깊이감이 두드러진다. 나뭇잎과 풀밭의 묘사에서 초록색을 나란히 굵게 잘라 규칙적으로 칠한 테크닉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런 비스듬히 규칙적으로 하는 터치는 형상을 빚어내는 게 아니라 형태를 면을 통해 조합한다.

 

 

[식탁], 1888-1890. 

세잔은 색을 통해 사물에 형태와 생기를 불어넣는다. 사물의 형태는 단순화된 기하학적 공식(원기둥, 원구, 원뿔)으로 환원될 수 있다. 결국 그려진 사물은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다촛점 시점을 사용한 정물화는 사물의 묘사보다는 색으로 환원된 사물과 공간이 돋보인다.

 

 

[생빅투아르산], 1890년께. 

세잔은 말년 15년 동안 엇비슷한 구성으로 생빅투아르산(수채화 45점, 유화 36점)과 목욕하는 사람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완성한다. 엑스의 서쪽 주변 여남은 지점에서 생빅투아르산을 그린 작품들은 모네의 연작과 같은 빛의 움직임에 따른 일련의 변주(variations)라기보다 종합적인 방식으로 변조(modulations)하여 암벽 덩어리의 안정성을 표현하려 애쓴다. 윤곽도 소실점도 없는 채색된 평면들을 통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확고부동한 돌덩어리 산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러면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묘사적인 시도라고는 전혀 없는 이런 이미지가 재구성된다. 

 

세잔이 추구하는 것은 선과 색 그리고 전체 구성이 통일되고 균형잡힌 공간을 만드는데 있다. 고전적 질서나 착시 효과, 질감 묘사가 아니라 모티브와 감각을 연결하는 새로운 고전주의다. 세잔의 풍경화에는 역사나 일화, 그림 같은 생생함(묘사) 그리고 인물마저도 제거하면서 건축적 질서를 보여주는 풍경을 구축한다. 눈으로 보고 느낀 감각을 조직화해서 모티브를 재구성한다.

 

왼쪽의 소나무를 사진의 앵글을 고정하는 틀로 쓰면서 뒤로 보이는 산이 다가와 보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사물들이 일그러지면서 가운데 지점은 오히려 생략된다. 세잔의 풍경은 미완성의 소묘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맹시 다리], 1879-1890년께. 

세잔의 청신한 녹색은 정말 매력적이다. 규칙적이고 평행하게 썰듯한 붓질을 통해 사물의 입체감을 표현한다. 견고한 구성과 구조를 통해 사물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추구한다. 이런 측면에서 세잔의 회화는 고전적인 전통과 일맥상통한다.

 

 

[목욕하는 소년들], 1890-1892 무렵.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그리면서 세잔은 분명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린다. 엑스 근처의 아르크(Arc) 강가에서 동무들과 멱감고 놀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마찬가지로 루브르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던 시절을 돌이킨다. 푸생을 비롯한 베네치아파 거장들처럼 대자연 속에 놓인 나체를 재현하려고 한다. 인체나 나무를 다양한 각도에서 형태와 덩어리를 단순화시켜 명확하게 표현한다. 작품 구성은 아주 조화롭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공간 처리를 통해 세잔은 20세기 초반 입체파를 예고한다. 그의 그림은 가시적인 법칙을 따르지 않고 공간과 사물을 재발견하는 미학적인 창조의 법칙을 따른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 나오는 몸매의 청년들의 용솟음치는 젊음과 나무들의 수직성이 일치한다. 하늘의 뭉게구름 마저도 위로 치솟는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 1890-1895 무렵. 

카드놀이 하는 사람을 소재로 모두 다섯 점이 있는데 뒤로 갈수록 부차적인 세부를 제거하면서 인물과 화폭이 줄어 든다. 마찬가지로 색상 또한 황갈색조의 단색으로 줄어든다. 벽 아래쪽 장식판과 탁자의 수평선과 탁자 오른쪽 가장자리에 놓인 포도주 병의 수직선이 균형을 이룬다. 포도주 병을 38선처럼 놓고 꼼짝 않고 말없이 앉은 두 사람이 자신의 패를 내려다 보는 시선이 자못 긴장감이 서린다. 얼큰히 취한 두 사람의 얼굴 색과 식탁보의 붉그스름한 색이 긴장된 손바닥과 어우러져 묘한 열기를 불러일으킨다.

 

[양파가 있는 정물], 1895. 

내려다 보는 시점(물병과 물잔)을 취한다. 병과 물잔의 수직선은 식탁 가장자리의 수평선과 짝을 이룬다. 나이프를 통해 깊이감을 표현한다. 배경은 추상처럼 완전히 비어 있다. 세잔은 총 2백여 점에 달하는 정물을 그린다. 정물에서 사물들을 아주 다양한 각도로 정교하게 계산하여 배치한다.

 

[귀스타브 제프루아(Gustave Geffroy)의 초상], 1895-1896. 

모델을 지겨워 죽을 지경까지 몰고 가는 세잔의 모델은 수 십번의 포즈를 취해야 했다. 앙부르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는 한 번에 두 세 시간씩 115차례 포즈를 취했으나 미완성으로 남는다. 작가며 미술 비평가인 제프루아도 80 차례 포즈를 취했지만 미완으로 남는다. 사물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재현하기 위해 붓질보다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느리게 그리기로 유명한 세잔은 작품 수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유화 850점, 수채화 650점, 정물 200점, 자화상 80점...

 

[사과와 오렌지], 1895-1900. 

사물들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묘사한다. 그 결과 사물들이 벽에 들러 붙어 있는 느낌을 준다. 식탁 위에 놓인 사물들이 와르르르 솟아져내릴 태세다. 벽지나 식탁보는 거의 추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세잔의 그림들은 거리가 멀어지면 더욱 더 선명하게 보인다. 세잔은 "사과 하나로 파리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겠다."하고 말한다. 그렇지만 세잔이 이 정물화에서 노리는 것은 사과나 오렌지의 둥근 형태 그리고 사물이 발하는 색과 둥근 형태에 중점을 둔다. 오베르 시절 정물에 꽃을 그리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관찰할 수 있는 과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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