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보아야 하는 파리의 명소

오페라의 유령을 찾아

파샤 (pacha) 2017. 11. 13. 01:23

오늘은 일진이 별로다. 뭔가 꼬이는 날. 진작 오전에 오후 일이 기차 연착으로 40분 연기된다고 연락이 왔다. 대신 점심 시간이 한참 늘어났다. 그래도 점심은 열한 시 반에 먹어야 한다. 오전 일이 일찍 끝나서 일단 볼일 하나를 처리하기로 했다. 모노프리에 들러 A4 용지가 들어가는 대형 봉투를 사서 우체국으로 갔다. 무슨 까닭인지 닫혀 있다. 다시 한번 닫힌 걸 확인하고 주변에 다른 우체국이 없나 검색해본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린다. 단골 우동집에서 곱배기로 우동을 먹고 나서 다시 우체국을 찾아 나섰다. 왠걸 두 번째도 닫혀 있다. 분명 토요일 여는 시간은 오후 1시까지라고 적어두고서는 문은 닫아 버렸다. 이렇게 다리품을 팔아 먼데까지 왔는데 닫혀 있다니... 삼고초려가 아니니 다행이지 뭐야. 


발길을 돌렸다. 논문 쓸 때 알게된 볼네(Volnay)라는 저명한 오리엔탈리스트의 이름이 붙은 길이 나왔다. 괜찮은 식당이라고 알고만 있던 Bistro Volnay가 여기 있네. 추천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집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포도주가 더 유명한 모양이다. 언제 한번 와야지. 메뉴판을 슬쩍 훑어보았다. 꽤 세군!


Bistro Volnay 유리창에 붙은 추천 광고들. 주소: 8 rue Volney 75002 Paris.


이왕 내친 걸음, 라파에트에 가서 주소나 바꾸자. 벌써 세 번째 주소 바꾸러 간다. 신분증 가지고 안 된다고 퇴짜를 맞았다. 전기가스회사 영수증은 아니고 가스 점검 결과를 적은 편지를 들고 갔다. 역시 퇴짜다. 제기랄 주소 바꾸는데 이렇게 힘들어서야! 5층에 라파에트 고객담당 코너로 가서 내가 받는 메일을 다른 걸로 바꾸었다. 세 번째 가서 성공한 게 고작 이것 뿐이다.


라파에트 백화점 돔의 노엘 장식.



아직 세 시 반까지는 시간이 거의 세 시간이 남았다. 뭘 하지? 그래 입구가 바뀐 뒤로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 오페라를 다시 가보자. 황제전용 입구를 통해 황제가 되어 들어가 보자고. 


공사가 끝나고 오페라 들어가는 입구가 바뀌었다. 오페라 대로쪽의 정문이 아니고 나폴레옹3세 전용 입구로 들어간다. 이젠 대중이 황제다. 그때까지 미완성이던 황제전용 입구가 대중을 맞으려고 완성되었다! 참 뜻깊은 일 아닌가.


오페라의 중앙 계단. 이 계단에만 서도 뭔가 스타가 된 느낌이 들지 않은가. 타이타닉호 영화에서 나온 오페라 계단은 바로 이 계단을 본뜬 거였다.


음악관련 특수 국립도서관. 음악 귀신들 관련 책들이 빼곡하다. 오페라의 유령은 여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라운지. 막간에 나와 바람 쐬기도 하고 샴페인 마시며 딱이다. 샤를 가르니에가 공사비를 줄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동으로 금효과를 낸 장식이며 일급 화가가 아닌 자신과 친한 평범한 화가한테 천장화를 맡긴 결과 그다지 훌륭하지 못하다.


극장으로 들어가는 둥근 복도. 이 복도만 어슬렁거려도 수준높은 오페라의 관객이 된 기분이 든다. 오페라에 비해 발레는 좀 다르다. 훨씬 대중적이다. 관객층이 다양한 대중이다.



18세기 중엽의 전설적인 무용수, 살레. 

무용수는 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흉상만 달랑 남겼나.


개인 전용 관람석의 모습. 이 관객석 손님은 무대보다 동행한 사람과 사교가 우선적이 아니었을까. 

오페라의 유령은 5번 복스좌석이 전용이었는데, 바로 이런 데서 유령이 오페라를 보지 않았을까.


개인전용 관람석으로 들어가는 문.


극장의 멋진 좌석 배치



언젠가 가시권이 떨어지는 자리에 앉아 목빼들고 무대를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다.



샤갈이 그린 천장화. 천장화 가운데 매달린 샹들리에는 내가 아는 한 단일 샹들리에로선 가장 많은 전구가 달린 것이다.




해골탈을 쓰고 검은 옷으로 칭칭두른 깡마른 오페라의 유령은 만나지 못했다. 오페라나 발레 공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사진으로 사냥만하는 관광객을 피해갔을 테다. 그래도 오페라의 유령을 찾을 양으로 나오면서 샤갈의 천장화를 담은 자석과 함께 서점에서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오페라의 유령]을 사들고 나왔다.


며칠 뒤 가려고 했던 우체국을 들렀다. 우편물을 직원한테 넘기면서 왜 토요일에 문을 닫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공휴일이니까 당연한 말씀! 맞다 맞아! 토요일이 공휴일!!


[오페라의 유령]은 에릭(Erik)이라는 전설적인 추남으로 온갖 신비술을 다 갖춘 기인인데 결국 보통 사람이 되어 보통 사람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려 보통으로 살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