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북쪽의 발루아 지방

모르트퐁텐(Mortefontaine)성

파샤 (pacha) 2012. 3. 22. 02:26

"시월의 어느날" 행사를 주최한 협회(Présence de Nerval)에서 성주의 허락을 받아 방문한 모르트퐁텐성. 모르트퐁텐은 네르발이 일곱 살까지 자란 작은 외활아버지 댁이 있던 마을. 성의 맞은 편 길에 있던 그 집은 헐리고 없다. 

인상주의 화가들한테 큰 영향을 끼친 코로가 한때 이 마을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한 바 있다. 루브르의 3층 프랑스 회화전시실에 가면 그의 [모르트퐁텐의 추억]이란 그림을 볼 수 있다. 현실의 풍경을 묘사하는 듯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고대풍이거나 목가적이다. 코로는 몽환적인 풍경에 비현실적인 인물이 끼어든 그림을 많이 남긴다.


코로, [모르트퐁텐의 추억], 1864년 살롱. 루브르 3층 프랑스 회화관.


성으로 들어가는 길. 스리지(Cerisy)에서 같은 건물에 묶었던 앙리 보네 선생님과 그의 부인. 보네 선생님은 협회에서 제작해 나눠준 지도를 꽂고 있다.



성주는 예상외로 젊은 남자였다. 40대초반쯤 되었을까. 이 집 차를 보라. 아우디와 미니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실비]에서 여자애들이 원무추는 잔디밭의 원형공간. 이곳 말고도 생제르맹(Saint-Germain) 성의 이미지도 겹쳐 나온다. 


"앙리4세적 성 하나를 떠올렸다. 판암으로 덮인 지붕은 뾰족뾰족하고 불그스름한 정면은 모퉁이에 가서는 누래진 돌들이 톱니처럼 박혀 있었다. 잔디 깔린 너른 뜰은 느릅나무와 피나무로 둘러 쳐 있었다. 지는 해는 마치 불화살로 나뭇잎을 찌르는 듯 파고 들었다. 잔디밭에서 꼬마 여자애들이 그네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옛 노래를 부르며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이렇게 순수한 프랑스 말 가사를 들으니 천 년 넘게 프랑스의 심장부를 고동친 유서 깊은 발루아 지방에 정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무추는 아이들 가운데 내가 유일한 사내였다. 아직 아주 어린 내 동무 실비를 데리고 왔다. 이웃 외딴 동네에 사는 실비는 꽤 발랄하고 퍽 순진한 여자애로 검은 눈의 반듯한 얼굴이 약간 그을려 있었다. 이때까지 나는 오직 실비만 좋아했고 실비 밖에 몰랐다. 우리네 춤판에서 여자애 하나가 겨우 내 눈길을 끌었을 뿐이었다. 금발에 훤칠하고 얼굴도 잘 생긴 소녀였다. 아드리앤느라고 불렀다. 원무의 규칙에 따라 돌연 아드리앤느는 원 한가운데 나하고만 단둘이 남게 되었다. 우리 둘은 키가 비슷하였다. 우리한테 입 맞추는 인사를 시켰다. 춤사위와 노래가 한층 활기차게 돌아갔다. 아드리앤느의 볼에 입술을 대면서 나는 응겁결에 그애의 손을 잡게 되었다. 아드리앤느의 길게 드리워지면서 끝이 말려 올라간 금발 머리가 내 볼을 스쳤다. 순간 야릇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아드리앤느는 노래를 불러야 원무 대열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아드리앤느를 죽 둘러싸고 앉았다. 그러자 아드리앤느는 청아하고 깊이 울려퍼지는, 안개 자욱한 이 지방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그렇듯 조금 잠긴 목소리로 옛적 로맨스 한 곡을 불렀다. 비가나 연가로 된 이런 로맨스는 보통 연애했다고 아버지의 명으로 성탑에 갇힌 공주의 불행을 노래한다.


아드리앤느의 노래가 울려퍼지자 큰 아름드리 나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막 비치기 시작한 달빛이 둥그렇게 앉아 귀기울이는 우리들과 홀로 떨어진 아드리앤느만 내리비쳤다. 아드리앤느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침묵을 깨지 않았다. 잔디 위로 안개가 뭉실뭉실 스쳐가면서 풀잎 끝에 이슬이 맺혔다. 우리는 낙원에 와 있다고 생각하였다. — 마침내 내가 일어나 화단으로 달려갔다. 단색으로 채색된 큰 자기 화분에 월계수가 심어져 있었다. 나는 월계수 두 가지를 꺾어 화관을 엮고는 리본으로 동여매어 왔다. 아드리앤느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어주었다. 윤나는 월계수 잎이 창백한 달빛을 받아 금발 머리 위에서 한층 더 빛을 발했다. 아드리앤느는 성소의 언저리를 떠도는 시인 단테한테 미소를 보내는 베아트리체 같았다.


아드리앤느가 일어섰다. 그녀는 늘씬한 몸을 일으켜 우아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뛰어서 성으로 들어갔다. 아드리앤느는 옛 프랑스 왕족과 인척 가문의 후손되는 이의 손녀라고 했다. 발루아 왕족의 후예인 셈이었다. 축제 날이라고 아드리앤느는 우리와 어울려 놀게 허락받은 터였다. 그러고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이튿날 아드리앤느는 기숙생으로 있는 수도원으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네르발, [실비])




파샤가 포함된 팀의 일원들. 이 팀 참가가 중에도 성주 부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