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쪽에서 보면 샹젤리제 거리 맨끝 개선문이 자리한 광장은 길이 열두 갈래로 나 있어 별광장(place de l'étoile)이라 부른다. 이런 로터리는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갈 길을 헤맬 때 로터리가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로터리에서는 모르면 한 바퀴 더 돌면서 이정표를 살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으면 된다. 개선문은 사방 어디서 보더라도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 빛의 도시라 부르는 파리는 영원한 도시, 도시의 대명사 로마를 모델로 삼아 도시 계획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터리를 중심으로 길이 방사선으로 퍼져나가게 설계한 점이다.
1806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836년에 완성된 개선문은 높이 50, 너비 45미터로 거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가운데 아치의 높이는 29미터다. 개선문의 원조는 로마에 있는 몇 개의 개선문이다. 서대문의 독립문은 파리가 원조.
1821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둔 나폴레옹은 살아서 이 개선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1840년 12월에 유해가 되어 통과한다.
왼쪽 벽면의 큰 부조를 보자. 가운데 나폴레옹이 서 있고 오른쪽에서 그의 머리 위에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준다. 눈여겨 볼 것은 나폴레옹의 머리 위의 날개 달린 여자이다. 오른손에 나팔을 쥐고 왼손에 깃발 달린 막대기를 든 이 여인상이 승리의 여신 니케다. 루브르에 가면 머리와 팔이 떨어져 나간 그 유명한 니케가 있는데 재구성을 하면 팔이나 손 모양이 전통적인 니케상하고는 조금 다르다. 유리상자 안에 전시된 오른손을 보면 나팔을 쥔 니케가 아니라 손바닥을 편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쪽 벽면의 [라마르세예즈] 혹은 [의용군의 출발]이라 부르는 군상은 개선문의 조각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낭만주의 조각가 프랑수아 뤼드(François Rude)의 작품이다. 칼빼든 여신 아래 뭉친 남정네는 모두 여섯이다. 반대편에는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두 개의 큰 부조가 부착되어 있다. 한쪽은 성난 말이 앞발을 들어 전투 태세에 들어가고 병사가 칼을 빼들며 성난 표정을 짓고 있다. 반대쪽은 온순한 소가 등장하며 곡식이 익어가고 주인공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쪽 바닥에는 여러 전쟁에 관련된 동판이 부착되어 있는데 1950-1953년의 숫자를 확인하면 한국전 관련 동판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한 무명용사를 1921년에 개선문 가운데 바닥에 안치하고 1923년부터 무명용사를 기리는 영원한 가스불꽃을 피운다. 매일 저녁 개선문에는 재향군인회에서 나와 행사를 벌인다. 왕년의 군인들이 군복에 훈장을 달고 군기를 들고 나오며 현역 군인들도 참가하고 관련 공무원들도 가담한다. 연설도 하고 국가 연주도 하며 마지막에 무명용사의 무덤에 꽃다발을 놓는다. 국경일 행사 역시 대통령을 비롯 장관들이 나와 개선문에서 치른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행사로 이날은 군사 열병식이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샹젤리제에서 펼쳐진다.
벽면 안쪽에는 작은 글자로 새겨진 것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절에 활약한 장군들 이름으로 모두 660 개이다. 그 보다 더 크게 새겨진 글자들은 나폴레옹 군대가 참가한 전투장 이름이며 통털어174 개를 헤아린다. 한데 1836년부터 1895년 사이에 새겨 넣은 장군 이름은 누락된 경우가 생겨 논쟁거리가 되었다.
개선문 꼭대기에 오르면 주변의 파리 시내를 굽어보기에 좋다. 매표소를 거친 다음 다리품을 팔아 284계단을 돌고돌아 오르면 그만한 값어치는 있다. 노약자를 위한 승강기도 있다.
5월25일의 개선문 앞 풍경. 저 부서지는 찬란한 봄 햇빛을 보라. 너무나 눈부시지 않은가.
무명용사의 무덤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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